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011]

누구나 아름다운 고향은 있다. 고향에는 추억이 있고, 고향의 나무와 달빛은 너무 오래 타향에 있었다고 나는 반겨 껴안는다. 뛰어놀던 곳이 그대로인데 변한 건 사람들 모습이다. 더러는 저 세상으로 떠났고, 더러는 타향에서 산단다. 반은 단청이고 반은 시 같기도 하면서 읊조린 시인의 시제는 어쩌면 고향 여주를 다 말한다. 천지는 끝이 없지만 삶은 끝이 있다고 하네,  호연히 돌아간 것은 무엇을 하려 함이었던가를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驪州題詠(여주제영) / 둔촌 이집
천지는 끝이 없고 인생은 끝 있고
호연 돌아간 것 무엇 하려 함인가
 여강 한 그림 같아서 단청은 시로다.
天地無涯生有涯      浩然歸去欲何之
천지무애생유  애       호연귀거욕하지
驪江一曲山如畫      半似丹靑半似詩
여강일곡산여화         반사단청반사시

우리 인생 마치 여강 한 구비 산 그림자와 같네(驪州題詠)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둔촌(遁村) 이집(李集:1314~1387)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천지는 끝이 없지만 삶은 끝이 있다고 하네 / 호연히 돌아간 것은 무엇을 하려 함이었던가 // 우리 인생 마치 여강 한 구비 산 그림자와 같네 / 반은 단청 같기도 하고 반은 시 같기도 하다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여주驪州로 돌아와서]로 번역된다. 고려 말에 신돈辛旽을 논박하다 미움을 받자 늙은 아버지를 업고 밤낮으로 달려 영천 최원도의 집에 은거한다. 1371년 신돈이 주살誅殺되자 이름을 [집集]으로 고치고, 호를 또한 [둔촌遁村]으로 바꾼 후 경기도 여주 천녕현川寧縣에서 자연을 벗 삼으면서 시詩와 학문에 전념하였으니 시적인 배경이 이해된다.
시인은 만년에 경기도 여주에서 여생을 보냈음을 생각한다. 천지는 어느 시점까지 가더라도 끝이 없지만 삶은 끝이 있다고 하는데, 호연히 여주로 돌아온 것은 무엇하려고 함인가를 묻고 있다. 이따금 시문을 일구면서 일반적인 사항을 두고 엄염하게 묻는 것이 시상의 격을 높이는 수가 많다.

화자는 전구前句 귀향이나 귀촌한 사람들이 여기까지 온 이유를 말하는 것을 자신에게 묻지만 후구에서 자기 자신으로 돌리는 현상을 보인다. 우리 인생은 마치 여강驪江의 한 구비 산 그림자와 같은 것인데, 반은 단청 같기도 하고 반은 시 같기도 하다는 엉뚱한 대답으로 자기 위안을 삼는다. ‘단청’은 달콤한 맛이겠고, ‘시’는 전념한 학문으로 대비되는 시상을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삶의 끝이 없다는 데 돌아가서 무엇 하나. 인생은 산 그림자 같아 반은 단창 반은 시문’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가는 둔촌(遁村) 이집(李集:1314~1387)으로 고려 말의 문인이자 학자다. 1368년(공민왕 17)에 신돈을 논박하다 미움을 받자 영천으로 도피하였다가 1371년 신돈이 추살되자 판전교사사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시와 학문에만 전념하였던 인물이다. 만년에 여주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전한다.

【한자와 어구】
天地: 천지. 無涯: 끝이 없다. 生有涯: 삶에 끝이 없다. 浩然: 호연하게. 넓고 크게. 歸去: 돌아가다. 欲何之: 어디로 가고자 하는 것인가. // 驪江: 여강. 一曲: 한 곡조. 山如畫: 산 그림자와 같다. 半: 반쪽. 似丹靑: 단청과 같다. 半似詩: 반은 시와 같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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