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007]

육안으로 보기에는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백구를 바라보면 한가하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그는 먹잇감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가한 백구는 인간에게 많은 것을 가르친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니 그 때를 기다리면서 차분하게 자기를 개척하라고 가르친다. 주살은 원래 너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만경창파 푸른 물결에 오히려 놀라니 의심되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白鷗(백구) / 근제 안축
주살은 너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닌데
만경창파 푸른 물결 놀라서 의심하고
시대에 편히 쉴 곳은 아무데도 없구나.
矰弋元非爲汝施    滄波萬里尙驚疑
증익원비위여시       창파만리상경의
回看今世功名路    無地安然可立錐
회간금세공명로       무지안연가립추

편안하게 서있을 만한 곳이 아무 데도 없구나(白鷗)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근제(謹齋) 안축(安軸:1282~1348)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주살은 원래 너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 만경창파 푸른 물결에 오히려 놀라니 의심하게 되었구나 // 이 시대의 부귀공명 뒤를 돌아 살펴보니 / 편안하게 서 있을 만한 곳이 아무 데도 없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흰 갈매기]로 번역된다. 이 시를 읽어보면 요즈음으로 말하면 동물애호의 정신을 엿볼 수가 있어 자연보호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또한 동물과 가만히 속삭이는 대화체 문장 작품의 이미지를 살렸을 뿐만 아니라 친근감을 주고 있다. 이런 표현 기법이 오히려 작품성을 높이고 있어 보인다.

주살을 놓는 것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다른 날짐승이나 물고기를 잡으려는 의도였는데 오히려 이로움을 주는 백구를 잡는 꼴이 되었음을 빗댄다. 시인은 주살은 원래 너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닌데 만경창파 푸른 물결에 오히려 놀라게 했으니 이를 의심하게 되었다는 시상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백구와 사랑스런 대화체 문장이 따스함을 스미게 한다.

화자는 선경에서 백구를 두고 인간만사의 허무를 잠시 빗대는 듯하더니 인간의 삶에 대한 비정함에 초점을 맞추는 시적인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부귀공명도 위와 같이 돌아서 살펴본다면 아무 곳도 편안히 서 있을 만한 곳이 없다는 시상의 진실을 토로하고 있다. 늘 불안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불확실한 상황에서 살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주살은 네가 아닌데 만경창파 의심되네, 부귀공명 살펴보니 서 있을 곳이 없구나’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근제(謹齋) 안축(安軸:1282~1348)으로 고려 말의 문신이다. 1332년(충숙왕 복위 1) 판전교지전법사에서 파면 당했다가 전법판서로 다시 복직되었으나 내시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었다. 충혜왕이 복위하자 다시 전법판서·감찰대부 등에 등용되었다가 이어서 상주목사를 지냈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矰弋: 주살. 元: 원래. 非爲: ~한 것은 아니다. 汝施: 너를 위해서. 滄波萬里: 만리창파. 尙: 오히려. 驚: 놀라다. 疑: 의심스럽다. // 回看: 돌아 살펴보다. 今世: 이 시대. 功名路: 공명의 길. 無地: 아무 데도 없다. 安然: 편안하다. 可立錐: 가히 서 있을 만한 곳.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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