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004]

서쪽 변방이면 압록강을 변경으로 한 국경지역이 아닌가 생각한다. 동북공정이란 말을 자주 들었듯이 동북은 두만강 및 그와 연결되는 연변지역이겠다. 깊어가는 가을에 자연의 변화에 시적 상상력은 풍만했음을 보이는 시상이다. 자연을 보면서 열 폭 병풍을 연상하는 대목에서 시상이 넉넉함을 엿볼 수 있어 감명 받는다. 가을이 깊으니 연못에는 물고기가 살이 찌는데, 구름이 다하니 서산에는 조각달이 빛나고 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西塞風雨(서새풍우)/쌍명재 이인로[즐거움=60쪽]
가을에 연못에는 물고기 살찌는데
구름 다해 서산에는 조각달 빛나고
홍진은 응달 도롱에 이르지 않는다.
秋深笠澤紫鱗肥    雲盡西山片月輝
추심립택자린비      운진서산편월휘
十幅浦帆千頃玉    紅塵應不到簑衣
십폭포범천경옥      홍진응부도사의

홍진은 응당 도롱이 정도에 이르지를 않는구나(西塞風雨) 번역해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쌍명재(雙明齋) 이인로(李仁老:1152~1220)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가을이 깊으니 연못에는 물고기가 살이 찌는데 / 구름이 다하니 서산에는 조각달이 빛나고 있구나 // 열 폭 포범에 천경은 마치 옥만 같기만 한데 / 홍진은 응당 도롱이 정도에 이르지를 않는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서쪽 변방엔 비바람이 치는구나]라고 번역된다. 북쪽 변방이 추운가 하면 서쪽 변방도 무척 춥기도 했던 모양이다. 산과 강의 모습도 무관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서새풍우는 당나라의 장지화가 벼슬을 버리고 연파조수煙波釣叟라 칭하면서 배를 타고 살았다 생각한다.

시인은 선경의 시상 속에 자연의 포근함을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었음이 작품의 밑바닥 속에 자리 잡고 있어 보인다. 가을이 깊으니 연못에는 물고기가 살이 찌는데 구름이 다하니 서산에는 조각달이 빛나고 있다는 선경의 시상을 그린다. 가을 역시 물고기가 살이 찌고, 서산은 조각달의 하소연으로 치환시키는 밑그림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자는 장자화의 시를 형상화하고 있고, 조선 후기 화가 장한종張漢宗의 어해도를 그려 '어부사(漁父詞)'의 한 구절을 형상화하기도 했었음을 상기한다. [복숭아꽃 흐르는 물에 쏘가리가 살찐다(桃花流水鱖魚肥)'는 부분을 생각할 일이다. 열 폭 포범에 천경은 마치 옥만 같기만 하다고 하면서 홍진은 응당 도롱이 정도에 이르지를 않다고 했으니 그 원형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가을 물고기 살찌고 서산에는 조각달이, 열 폭 포범 옥만 같고 도롱이에 못 이루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쌍명재(雙明齋) 이인로(李仁老:1152~ 1220)로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뒤에 환속하여 25세 때에는 태학에 들어가 육경을 두루 학습하였던 인물이다. 1180년(명종 10) 29세 때에는 진사과에 장원급제함으로써 그의 명성이 온 사림에 크게 떨쳤다. 시로써 당대에 이름이 났던 인물로 알려진다.

【한자와 어구】
秋深: 가을이 깊다. 笠澤: 연못, 紫鱗: 물고기를 아름답게 일컫는 말. 肥: 살찌다. 雲盡: 구름이 다하다. 西山: 서산. 片月輝: 조각구름이 빛나다. // 十幅: 열 폭. 浦帆: 포범. 千頃: 아주 넓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드넓은 못의 물. 玉: 옥. 紅塵: 홍진. 應不到: 응당 이르지 않다. 簑衣: 도롱이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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