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이미 지난달에 추석명절이 지나갔다. 연중 큰 명절 중 하나가 추석명절이다. 음력으로 설날이 있고 역시 음력 8월 대보름인 추석이 지나갔다. 필자는 이 난을 통해서 명절(추석 등)에 대해서 몇 번 언급한 바가 있다.

추석의 유래는 삼국시대 이전부터란 얘기도 있고 신라시대에 햇곡식을 거두고 조상에게 예를 올렸다는 문헌도 있으나 조선시대에 와서 유교적 사상이 활발할 때 크게 발전해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 정설인 것 같다. 일제강점기 때 설날은 양력을 쓰게 하고 음력설은 아예 설 자체를 부정했으나 추석명절 만큼은 제재를 안 했다고 한다.

어쨌든 추석은 먹을거리가 풍부한 계절의 명절이다. 햅쌀이 나오기 시작하고 햇과일과 밤 대추가 나온다. 가난했던 5천년의 역사가 이어질 때 여름이면 지난해의 곡식이 다 떨어질 무렵이다. 이때 햇곡식이 나온다는 것은 정말 축복받은 계절이다. 적어도 농경사회에서는 이때만큼 풍성한 때가 많지 않다. 우리나라도 배고픔에서 벗어난 지가 불과 5~60여 년 전부터다.

1950~60년대 때는 먹는 게 제일 우선이다. 60여 년 사이에 5~6천년의 한을 한꺼번에 해결한 셈이다. 인간에게 가장 슬프고 한 맺히는 것이 배고픔일 것이라고 한다. 그 굶주림을 해결한 것이 한국의 상공업화 정책이다. 농업에서 벗어나 오늘날 세계 230여개 나라 중에서 무역 규모와 수지가 10번째쯤 되는 나라가 됐으니 이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단군 이래 최대의 번영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60여 년 동안에는 무수한 시행착오가 있었고 과오도 있었다. 희생도 있었고 모험도 있었다. 하지만 잘 견뎌내고 오늘날의 풍요로움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 번영된 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고 땅에서 솟구친 것이 아니다. 60여 년 동안에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다.

명절 때면 한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서울을 위시한 수도권과 대도시의 사람들이 고향을 가기 때문이다. 간혹 시골(농촌)에서 서울이나 수도권 또는 대도시로 상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고향으로 귀향한다. 열차와 시내버스도 귀향민을 위해 특별배차하기도 한다. 상경기가 일시나마 반짝 뜬다. 지난번 연휴는 대체공휴일 없이 4일간이 휴일이었다.

명절 연휴에는 고향이 없든가(월남민) 도시사람들은 해외여행을 많이들 간다. 어떤 이들은 집에서 간단한 차례음식상을 꾸려 해외에 가서 차례를 지냈다고도 한다. 국내에서는 모텔이나 리조트 펜션 또는 휴양시설 등을 이용해 온가족 내지 친인척이 모여 차례를 지냈다고 한다. 어쨌든 시대가 변하는데 차례인들 안 변할까를 생각해본다. 

명절의 차례 하면 의례히 유교적 냄새가 물씬 난다. 제례 자체의 본바탕이 어쩌면 유교의 관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명절하면 여자(며느리)들이 명절증후군이라고들 해서 얘기들이 많다. 통계학적으로 봤을 때 대도시에서 명절 한번 쇠고 나면 이혼건수가 부쩍 는다고 한다. 명절은 어느 가족(특히 종갓집)에게 무거운 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조상에 대한 예의로 조금 부담스럽지만 그러려니 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명절증후군은 안 생길 것이다. 물론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보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말이다.

필자의 경우는 애들이 서울에 살고 명절 때나 기제사 때는 제물을 서울의 며느리가 만들어서 가져온다. 집에서는 뫼와 탕만 끓여 아주 최대한 간단하게 지낸다. 명절 때가 되면 항상 며느리에게 미안한 맘을 갖게 된다. 이번 추석명절도 예나 다름없이 그렇게 보냈다.

우리나라는 추석이지만 중국은 중추절 미국을 위시한 서양에서는 추수감사절이라고 해서 축제를 연다. 이유야 어쨌든 즐거운 명절은 세계인들이 한마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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