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홍천신문 지령 933호에 매주 게재하는 필자의 칼럼이 400회를 맞았다. 연간 약 50여회(매주1회)에 거쳐 한 번도 결본 없이 썼다는 것은 나 스스로 여간 대견한 게 아니다. 지금까지 100회를 쓸 때 마다 꼭 썼던 내용이 있다. 100회를 기준으로 다음 100회를 쓴 후에는 그만 쓸지도 모르겠다는 얘기다.

그러니 300회째까지 400회를 끝으로 칼럼을 접어야 했는데 또 100회를 써서 400회째다. 앞으로 100회면 500회가 되고 대략 2년쯤 후가 될 것이다. 또 쓸 것인가 아닌가는 그때 가봐야 알 것이다. 사람의 앞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400회 동안의 내용들을 다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제목을 대면 대강은 알만한 것들이다. 홍천의 소소한 변천사 얘기들부터 필자의 일상적인 것들 주변의 이야기 때로는 정세에 대한 의견 등등 많은 분야에 대한 내용들이다. 금융에 대한 내용과 체육 문화 지역에 대한 이런저런 내용들이다. 300회는 2017년 9월 6일자였다. 만2년하고 19일 만에 400호가 게재된 셈이다.

그동안 만8년 넘게 쓴 내용들 중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비슷한 제목으로 쓰되 소제목이나 제목 끝에 번호를 넣어 2회나 3~4회까지 나간 것이 몇 있었다. 벌초에 관한 것과 홍천관내 농업협동조합 소사 같은 것은 5회에 거쳐 썼다. 그 외 효(孝)에 대해서도 몇 회 나눠 쓴 적이 있다. 2018. 10. 10 홍천신문 통산 885호에 게재된 “추석명절을 쇠고” 352회도 2회에 거쳐 썼다.

2018. 2. 14 게재된 “무자식 상팔자 유자식 하팔자”도 3주 연속해 썼다. 2017. 12. 20에 게재된 “해외여행을 하고”도 4회까지 연속으로 썼다. 2018년도에 들어와서는 홍천의 문화재라든가 가정의례 등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들을 썼고 홍천신문 제866호 연속 333회에서는 “1960년도 전후의 홍천의 인물사”를 썼다. 특히 2018년 6월에는 지방선거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쓴 것 같다.

신문의 기고문이 원래 일정한 형식이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것이라고 쓸 수도 없다. 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시대도 반영해야 하고 필자의 일상적인 내용도 있을 수 있다. 어떤 사안에 따라서는 논설문 형식을 따를 때도 있고 수필이나 잡문의 내용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주로 시대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 정치의 혼동 경제의 명암 스포츠 연예 문화 활동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게 된다.

특히 필자의 경우는 1953년 휴전직후부터 현재까지 홍천을 떠나 살아본 적이 별로 없이 생활했기 때문에 홍천에 대한 사회 경제 문화 예술 스포츠 등등에서 산 경험과 체험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후세에 조금이나마 전하고픈 마음에서 이 기고문을 계속 쓰고 있는 것이다.

70여 년 홍천생활 중 1975년 직장관계로 춘천에서 1년을 근무했고 1987년 역시 직장관계로 인제에서 3년 근속한 것이 외지 생활의 전부이다. 이사도 홍천읍에서만 뱅뱅 돌다 지금의 자택에서 45년째 살고 있다. 1959년 홍천에서 최초로 보습학원을 경영할 때 가르쳤던 제자가 70세가 됐고 그네들의 조부님을 잘 알고 있어 그 집안 5대의 내력을 알고 있으니 어찌 보면 참 긴 세월을 산 셈이다.

앞으로 만2년 좀 넘으면 500회가 될 것이다. 그때까지 이 칼럼을 쓸지 안 쓸지는 나도 모른다. 허나 마음만은 펜을 들 수 있을 때까지 쓸 예정이다. 내 졸필을 어느 독자가 읽어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쓸 용기가 난다. 또한 멀리 바다 건너 미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열심히 읽고 있는 학교 동창인 지인 박준업 형을 위해서라도 홍천신문에 기고를 하겠다. 앞으로 2년 동안 약 100여 편의 기고문에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활자화되어 한 지면을 장식할지 필자인 나 자신도 아리송하다.

저작권자 © 홍천뉴스 / 홍천신문 홍천지역대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