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150】

기다리던 손님은 끝내 오지 않고 말았음이 시상의 내용 속에 푹신하게 묻어나는 모습을 본다. 누구에게나 사람을 기다렸던 경험은 있다. 늦게나마 찾아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내 약속을 까맣게 잊고 영원히 오지 않는 경우는 누구나 경험했을 터이다. 흔히 주저리 열릴 수 있는 인간사일 수 있다. 터벅터벅 집에 돌아가 그만 잊어버리고서 잠이 들고 싶으니 갑자기 웬일일까, 꿈속에서나마 도리어 서로 만나보자고 애달프게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南樓中望所遲客(남루중망소지객)[4] / 고봉 기대승
책을 대하고서 초초하게 잠 못 이뤄
글 뜻이 너무 깊어 풀어내기 어려운데
갑자기 잠들고 싶어 꿈속에서 만나 보자.
對卷?無寐    微義嗟難析
대권초무매    미의차난석
頹思遽如何    夢裏飜相?
퇴사거여하    몽리번상적

글 뜻이 깊어서 안타깝게 풀기도 어렵구나(南樓中望所遲客4)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율시다. 작자는 기대승(奇大升;1527~157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책을 대하고서 초조하게 잠 못을 이루었는데 / 글의 뜻이 너무 깊어서 안타깝게 풀기도 어렵구나 // 그만 잊어버리고서 잠이 들고 싶으니 갑자기 웬일일까 / 꿈속에서나마 도리어 서로 만나보자꾸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남루에서 늦게 오는 손님을 맞다(4)]로 번역된다. 앞 3구로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가는 바람이 나무 가지에 부딪치어 자꾸 흔들리고 / 쓸쓸하게도 나의 슬픔이 더해만 가는구나 // 여러 겹의 성이건만 생각만은 지척에만 있는 것 같아서 / 아득하게도 먼 구름이 낀 산으로 막히는구나]라는 시심을 한껏 쏟아내고 있다. 기다리다 발길을 돌리는 상황이 훤하게 보이는 듯하다.

시인은 늦은 밤이지만 시인의 책을 대하고 초조하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지만, 글 뜻이 깊어서 안타깝게도 풀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얼굴에 아롱거리는 건 손님의 얼굴 뿐 아무리 책을 읽어도 그 깊은 뜻을 잘 모르겠다는 심회어린 생각을 쏟아내고 있다. 손님을 만나지 못한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다 보면 더 다른 생각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대로 노정하고 있어 보인다.

시인은 화자의 입을 빌어 손님을 만나기로 한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잠을 청해 보지만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고 놀란다. 다 잊고서 잠들고 싶지만 이게 갑자기 웬일일까 꿈속에서 도리어 서로 만나보자고 했다. 그렇지만 쉽게 잠을 청할 수가 없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책 읽으며 잠 못 이뤄 깊은 글 뜻 모르겠네, 갑자기 초조해져서 꿈속에서 만나잔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다. 중종과 인종이 잇달아 세상을 떠나자 나물 반찬의 밥을 먹으면서 졸곡을 마쳤다고 알려진다. 사림의 변고(을사사화)를 듣고는 일체의 음식을 폐하고 눈물을 흘렸으며 문을 닫고 결코 출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자와 어구】
對卷: 책을 대하다. ?: 초조하다. 無寐: 잠을 이루지 못하다. 微義: (책 속의 글) 뜻이 깊다. 嗟l 아-아 감탄사. 難析: (책의 뜻을) 풀기가 어럽다. // 頹思: 생각이 쇠퇴하여, 곧 잊고서. 遽: 문득, 갑자기. 如何: 어찌할까요? 夢裏: 꿈 속. 飜: 뒤집어서. 도리어. 相?: 만나보았으면.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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