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가 싶더니만, 바람과 비를 맞고 꽃이 떨어지면 으스스해진다. 마치 초가을을 연상하기도 한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린 은하수가 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으리라. 남편이 서울을 떠나 강원도 원주 땅에 있었던 모양이다.

고향이 원주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시적인 분위기를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겠다. 한 많은 이 몸은 기러기만도 못한 신세려니, 해마다 임이 계신 원주 땅엘 가지 못하고 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落花天氣(낙화천기) / 반아당 박죽서
촛불로 밤새우는 동이 트는 새벽녘에
기러기 울음소리 애처로워 못 듣겠네
임 향한 굳센 마음은 깨이면서 사라져.
落花天氣似新秋   夜靜銀河淡欲流
락화천기사신추     야정은하담욕류
却恨此身不如雁   年年未得到原州
각한차신부여안     년년미득도원주

한 많은 이 몸은 기러기만도 못한 신세려니(落花天氣)로 제못을 붙인 칠언절구다. 작자는 반아당(半啞堂) 박죽서(朴竹西:1817~1851)로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꽃이 떨어지는 봄은 첫가을과 같았는데 / 밤이 되니 은하수도 맑게 흐르고 있네 // 한 많은 이 몸은 기러기만도 못한 신세려니 / 해마다 임이 계신 원주에 가지 못하고 있다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꽃 지는 계절이 되면]으로 번역된다. 시인은 10세에 이미 뛰어나게 시를 잘 지어 천재성을 보였으며, 시문은 거의 서정적이다. 조선 여인의 특징인 임을 애타게 그리는 여심(女心)과 기다림에 지친 규원적(閨怨的) 소제로 한 시문을 많이 남겼다. 그의 반아당(半啞堂)이란 호에서 보여주듯이 반벙어리라는 뜻에서 그의 삶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녀로 태어나 소실로 생을 마감했으니 가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시인은 꽃이 피었다가 떨어지는 애절한 봄은 마치 첫가을과도 같았었는데, 소소한 밤이 되고 보니 은하수도 맑게 흐르고 있다는 시상을 떠올렸다. 시상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떨어지는 꽃과 은하수가 잔잔하고 곱게 흐르는 모습의 그림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음을 느끼게 한다.

화자는 초겨울을 연상하는 봄의 한기를 맛보며 자기의 딱한 처지로 시심의 눈을 돌린다. 한 많은 이 몸은 기러기만도 못한 신세라고 한탄하면서, 해가 바뀌지만 임이 계신 원주로는 가지 못하고 있다는 시상을 떠올리고 있다. 원주는 임이 계신 곳이라기 보다는 친정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보는 것이 더 좋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봄은 첫가을과 같고 은하수도 맑게 흘러 기러기도 못한 신세 원주에도 못가면서’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박죽서(朴竹西:1817~1851)로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이다. 원주 사람으로 철종 대에 종언(宗彦)의 서녀이자 서기보(徐箕輔)의 소실로 알려진다. 그의 시풍은 한유와 소동파의 영향을 받았다. 일생동안 병약하여 시풍이 감상적인 면이 많았으며, 사후 1851년에 발간된 한시 126수가 죽서집에 전한다.

【한자와 어구】
落花: 꽃이 떨어지다. 天氣: 천기. 계절. 似: ~과 같다. 新秋: 초가을의 날씨. 夜靜: 밤이 고요하니. 銀河: 은하수. 淡: 맑다. 欲流: 흐르고자 하다. // 却: 문득. ‘부사’로 쓰임. 恨此身: 한 많은 이 몸. 不如雁: 기러만도 못하다. 年年: 해마다. 未得到: 가지 못하다. 原州: 원주. 임 계신 곳. 혹은 부모님이 계신 곳.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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