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요즘 집에서 하루 세 때를 먹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삼식이가 없고 이식이나 일식이가 대부분이다. 아침은 집에서 먹지만 점심은 직장인은 직장에서 해결하고 은퇴자나 노인들은 노인정이나 복지회관 등에서 먹고 저녁도 밖에서 먹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농촌에서도 농사일을 하고 새참이나 점심은 식당에서 시켜(배달) 먹는다. 수년 전만 해도 벼 심을 때와 논맬 때 벼 벨 때는 들에서 먹었다. 못밥(모심을 때의 점심)이나 벼를 벨 때  들에서 먹는 밥은 꿀맛이었다. 지금은 그런 풍경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가 없다.

사람은 하루 세끼의 밥을 먹어야 산다. 하루에 한 끼나 두 끼로 사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세끼를 먹는다. 하루 한 끼의 식사는 한 달이면 30회고 1년이면 365회 십 년이면 3,650회다. 점심을 먹었으면 두 끼로 약 7,300회다. 여기다 저녁까지 하루 세끼를 다 먹었다고 치면 10,950번이다. 부인과 20년을 해로했다면 21,900번이고 30년을 살았다면 32,850번이다. 필자의 경우 50년을 해로했으니 54,750번의 식사를 한 셈이다. 엄청난 숫자다. 여기서 아내의 수고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이제는 주부가 매끼 식사를 챙긴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버릴 때가 됐다. 한 끼의 식사를 만들 때 밥 짓는 것은 아주 쉽다. 문제는 반찬이다. 여유가 있는 집이든 그렇지 않은 집이든 간에 반찬 준비에는 많은 신경이 쓰인다. 밥을 직접 지어본 사람이면 안다. 주부(아내)의 고민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여유 있는 집은 그대로의 고뇌가 있고 넉넉지 못한 집안은 또 그 나름대로의 고민이 따른다.

똑같은 반찬을 계속 상에 올릴 수도 없는 처지다. 주부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또 집안 식구들의 식성도 문제고 더구나 어린이(학생)가 있다면 더더욱 반찬에 신경을 써야하는 게 주부들 하루아침의 시작이다. 여기에다 맞벌이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아침은 전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네 주부들은 군소리 하나 없이 남편과 자식을 위해 헌신해왔다. 내 몸은 돌볼 생각도 없이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주부들께서도 한번쯤 나를 돌아볼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수년 전만 해도 아내를 집사람이라고 해서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전업 직업가로 칭했고 남편은 바깥사람이라고 서로들 불렀다. 서양처럼 마땅한 용어가 없어서 그렇게 호칭했는지는 몰라도 사실은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맞벌이시대다. 현모양처의 시대는 끝났고 현모현처시대가 돌아온 것이다. 아이들도 일찌감치 낳고 단산하든가 아예 자식들 없이 단 둘이 살면서 가정을 꾸미는 두 가족 세대도 많다. 이런데도 여자만 가사 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가? 비록 도시생활도 그렇지만 농촌은 더하다. 봄부터 가을가지 들일을 거들고(요즘은 하우스농사로 4계절 내내 일이 많다) 살림은 살림대로 해야 한다. 빨래도 아이들 챙기는 것도 모두 주부의 몫이다. 일이 너무 많다.

우리나라 식사는 밥을 주식으로 하기 때문에 반찬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식사 후 설거지 또한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제라도 주부들의 일을 남편들이 도와줘야 한다. 남자가 부엌일을 하면 이상하다는 개념이나 선입감은 없애야 한다. 현실에 입각해서 당면한 문제도 주부와 같이 해결해야 한다. 한 집안에서 가사 일은 아내의 전담이라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은 버려야 할 것이다. 가정에서 주부의 노동력을 최저임금 이상으로 간주해 늘 노고에 감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조선시대(유교의 영향) 사대부집안이라고 해서 가정일은 여자가 하는 것이 당연시 돼왔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 자유민주화시대다. 남자로서 꼰대 소리 듣지 말고 삼식이를 벗어나 일식이나 이식이가 되고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들고 하는 멋지고 현명한 남성이 되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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