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지난 6월5일 현충일을 하루 앞두고 홍천문인협회 연례행사의 하나인 문학탐방이 있었다. 군내 10개 읍·면 중 8번째로 북방면편이다. 홍천문화원에서 문화발전을 위한 문화탐방 행사로서 차량과 부대비용을 지원했다. 사무국장이 직접 동행해 탐방은 더욱 알차게 진행됐다.

북방면은 홍천읍을 중심으로 북쪽에 있다고 해서 일제강점기 초기에 행정구역상 면조직명으로 붙여졌다. 북방면은 크게 면내 구역이 수상과 수하로 나눠져 있다. 화양강(홍천강) 인접과 역전평을 수하 그 이외를 수상이라 한다.

이번 탐방인원은 문인협회 회원과 더불어 홍천군노인복지관 풍물단원들이 동행하게 됐다. 첫 번째 방문지는 송학정이다. 북방면 하화계리 동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10여 년 전 무궁화테마공원이 조성된 곳이다. 옛 송학정은 수십 년 전 소실돼서 없고 지금은 무궁화 숲과 현대식 정자각 두 동이 있다.

송학정 동쪽 절벽 밑에는 화양강(홍천강)이 굽이져 흐르고 홍천읍내와 특히 연봉리 지역이 눈에 확 들어온다. 향후 이곳에 인공폭포와 출렁다리를 놓으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 곳이다.

일행은 두 번째로 성동리 초입새에 있는 강재구 소령 추모공원을 돌아봤다. 강재구 소령은 1960년대 월남 파병을 앞둔 파월국군장병에게 수류탄 투척 훈련을 시키던 중 부하직원이 수류탄을 잘못 던져 30여 명이 대기 중인 소대원들이 있는 쪽으로 떨어지자 강 소령이 몸으로 덮쳐 수많은 장병들의 목숨을 건지고 본인은 장렬하게 산화한 곳이다.

강 소령은 당시 대위로서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이곳 인근 부대에서 파월장병들을 교육시키는 중대장이었다. 산화 후 1계급 특진해서 소령으로 진급했다. 그는 사고당시 부인과 외아들을 두었다. 육사 동기들은 거의 장군으로 진급이 돼 최고 대장인 4성 장군으로 1군사령관까지 진급한 자도 있다. 만약 강 소령이 사고가 없었다면 그 또한 장군의 일원으로 있었을 게다.

동기 중 한사람이 이곳 사단장으로 부임해 충혼탑을 건립하고 그 가족으로 부인(온 여사)과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외아들이 참석했을 때 육군 최고 사령관이 아들에게 “네가 이다음에 자라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 육군사관학교에 온다면 무조건 받아줄 테니 그리 알라”고 했다.

그 후 아들이 커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사가 아닌 서울대학교 공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하자 6년 전 충혼탑 준공 시 취재했던 모 신문기자가 아들에게 “자네는 아버지가 나온 육사에 갈 수 있는데 왜 안 갔냐?”고 묻자 그는 “국가를 위하는 일은 꼭 군인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유명한 공학도가 돼서 나라에 충성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후 아들은 대학 졸업 전 한국 굴지의 대기업에 취업해 열심히 일한다고 했다. 지금도 매년 강 소령이 산화한 날과 현충일에는 모자가 필히 참석해 강 소령을 추모한다.

일행은 성동저수지를 지나 구절산이 보이는 강원생태공원을 잠깐 둘러보고 대룡산이 먼발치로 보이는 연화사를 탐방한 후 화양강 끝자락인 남노일을 향했다.

화양강(홍천강)은 동서가 4백여 리다. 그 중 화양강이 백여 리 이고 홍천강이 백여 리다. 두촌면과 내촌면 합수머리인 철정천과 화촌면과 서석천의 합수지인 외삼포를 기점으로 북방면 노일리까지가 화양강이다. 홍천강은 팔봉리와 마곡리까지를 이른다. 굴지리에는 화양초등학교가 있었으나 학생 수 감소로 지금은 폐교됐다.

일행은 북방 능평리 능뜰공원과 무궁화공원을 돌아보고 동양에서도 몇 째 안가며 한국에서는 제일 큰 하이트맥주 공장을 둘러봤다. 모든 게 자동화 시스템이었다. 끝으로 시원한 생맥주 한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며 문학탐방의 일정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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