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경우가 많지만, 반대로 여자가 남자에게 구애를 했던 경우도 더러 있었다. 사랑은 또래가 맞아야 한다고도 한다. 이것마저도 마지노선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보면 사랑엔 국경이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시중을 드는 50여살 이상의 차이가 나는 아가씨가 시인을 사모한 나머지 구애를 했으렸다. 변양이시여! 부디 내 나이 일랑 더는 묻지 마오, 나도 오십년 전에는 갓 스물 셋이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贈卞僧愛(증변승애) / 자하 신위
나이를 묻지 마오, 단장한 모시 적삼
마음 속 정성으로 재잘대며 이야기로
임이여 오십년 전에 내 나이가 스물 셋.
澹掃蛾眉白苧衫      訴衷情話燕呢喃
담소아미백저삼         소충정화연니남
佳人莫問郞年歲      五十年前二十三
가인막문랑년세         오십년전이십삼

변양이시여! 부디 내 나이 일랑 더는 묻지 마오(贈卞僧愛)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5)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내 나이를 묻지 마오 눈썹 곱게 단장한 흰 모시 적삼인데 / 마음 속 정성스런 말 재잘재잘 얘기한다네 // 변양이시여! 부디 내 나이일랑 더는 묻지마오 / 나도 오십년 전에는 갓 스물 셋이었다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변승애에게 주다]로 번역된다. 변승애란 기녀가 자하의 풍류와 시심을 사모한 나머지 곁에 모시면서 필묵 심부름이라도 하겠다고 자진해서 나섰다. 자하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었다. 고분고분 잔심부름까지도 잘 하던 기녀가 점점 연심을 가졌다. 연정을 품고 구애求愛를 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농조로 알아듣다가 이를 알아차린 자하가 정중하게 거절하는 시문이다. 신위의 나이 73세였다.

시인은 ‘변승애여! 제발 그러지 마시라. 자네는 아직 청춘일세, 더 좋은 사람을 만나 청춘을 불살라 살아가시게’라는 마음을 담았음은 뻔했을 것이다. 젊었을 적에는 눈썹 곱게 단장한 흰 모시 적삼에, 마음 속 정성스런 말을 재잘재잘 얘기했었다는 과거회상적인 정갈스런 한 마디를 던졌다. 정중한 자기 마음을 담아내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화자는 더 속 깊은 50년전으로 되돌아간다. ‘변승애 임시시여(佳人) 임이시여! 내 나이 묻지를 마오. 오십년 전에는 내 나이도 스물 셋이었다오’라는 쓰디쓴 한 마디다. 나이 연만함을 핑계 삼아 여자의 구애를 적절하게 거절하는 시적인 묘미를 찾는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눈썹 단장 모시 적삼 정성스런 얘기하네, 내 나이 묻지 마오 오십년 전엔 스물셋’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5)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1799년(정조 23) 춘당대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초계문신에 발탁되었다. 1812년(순조 12) 진주 겸 주청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갔는데, 이 때 중국의 학문과 문학을 실지로 확인하면서 안목을 넓혔다. 시조를 번안한 소악부가 전한다.

【한자와 어구】
澹: 담박하다. 掃: 쓸다. 蛾眉: 아름다운 미인의 눈썹. 白苧衫: 흰 모시 적삼. 訴: 하소연하다. 衷情話: 마음속의 정의 말. 燕呢喃: 재잘재잘 거리다. // 佳人: 가인이야. 莫問: 묻지 말라. 郞: 낭군. 年歲: 내 나이. 五十年前: 오십 년전 二十三: 이십 오세.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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