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2-120]

일본이 우리를 침략한 횟수는 부지기수다. 그들은 대륙침략이라는 야욕을 버리지 못해 틈만 있으면 한반도를 넘봤다. 임진왜란 때는 중국으로 갈 테니 길을 비켜달라는 구실을 내세웠는가 하면, 청일전쟁을 구실삼아 우리 땅을 전쟁의 장으로 끌어 들였다. 청산리 싸움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백야의 우렁찬 기상을 다시 듣는다. 십년 동안 와신상담 벼르고 벼른 마음일진대, 동쪽에 떠있는 현해탄의 저 티끌일랑 쓸어버리겠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向祖國進軍(향조국진군)[2] / 백야 김좌진
펄럭이는 깃발들 천리 연해 해를 덮고
북소리 뿔 소리는 하늘 치켜 흔드는데
벼르던 십년 상담에 현해탄을 쓸리라.
旌旗蔽日連千里    鼓角掀天動四隣
정기폐일연천리      고각흔천동사린
十載臥薪嘗膽志    東浮玄海掃腥塵
십재와신상담지      동부현해소성진

동쪽에 떠있는 현해탄 저 티끌일랑 쓸어버리리(向祖國進軍)로 변역해본 율(律)의 후구인 칠언율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펄럭인 깃발은 천리 연해 길게 덮었고 / 북소리 뿔소리는 하늘 치켜서 흔드누나 // 십년 와신상담 벼르고 벼른 마음일진대 / 동쪽에 떠있는 현해탄 저 티끌일랑 쓸어버리리]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조국을 향하여 진군하리(2)]로 번역된다. 시인은 갑작스런 왜침으로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에 촛불 격인 위기에 놓였을 때 싸워서 큰 공을 세웠다. 이렇게 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시상 속에 숨겨져 있는 결의에 찬 각오와 조국애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전구에서는 [대포소리 울려 퍼져 만방에 봄이 오니 / 푸른 뫼 큰 땅에도 만물이 새롭구나 // 달빛 아래 산영山影에서 나그네는 칼을 갈고 / 바람 부는 철채鐵寨에서 주인은 말을 먹이네]라는 시심을 발휘했다.

시인이 청산리 싸움에서 대승할 수 있었던 것은 앞으로 펼쳐지게 될 조국의 운명을 예감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펄럭이는 깃발은 천리 연해 해를 덮었고, 승리해야겠다는 북소리와 승전보의 뿔소리는 하늘을 치켜 흔들었다고 했다. 얼마나 우렁차고 활기 넘치는 우리의 기상인가. 얼마나 조국을 지키겠다는 우리의 함성인가.

화자는 벼르고 벼른 마음으로 마지막 종구에서 모두 다 표현하고 만다. 십년동안 와신상담臥薪嘗膽했던 벼르고 벼르던 마음일진대, 동쪽에 떠있는 현해탄의 저 티끌들을 모두 쓸어버리리라는 당찬 각오를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천리 연해 덮인 깃발 북소리 뿔소리가 덮고, 와신상담 벼른 마음 현해탄 티끌 쓸어버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백야(白冶) 김좌진(金佐鎭:1889~1930)으로 독립운동가다. 1920년 10월 20∼23일 청산리 80리 계곡에서 유인되어 들어온 일본군을 맞아 백운평·천수평·마록구 등지에서 3회의 격전을 전개 일본군 3,300명을 섬멸했던 큰 공훈을 세웠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한자와 어구】
旌旗: 깃발, 蔽日: 해를 덮다. 連千里: 천리연해. 鼓角: 북소리 뿔소리, 掀天: 하늘로 치켜들다, 動: 흔들다. 四隣(사방의 이웃, 十載: 십년, 臥薪嘗膽: 원수를 갚으려 하거나 실패한 일을 다시 이루고자 결심하고 어려움을 참고 견딤. 志: 뜻. 東浮: 동쪽으로 뜨다. 玄海: 현해탄, 掃: 쓸다, 腥塵: 비릿한 티끌.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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