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근
홍천문화재단 이사

강원도에는 댐이 많다. 소양, 춘천, 의암, 화천, 강릉, 횡성, 달방, 평화의 댐 등 많은 댐이 있지만 강원도에 기여도는 거의 없다. 오히려 도민 1인당 10평 이상의 농경지가 수몰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다음의 내용은 강원도지사(26대·29대)와 노동부 장관을 역임하신 이상룡 어른의 증언을 정리해 표현했음을 밝혀둔다.

홍천군 서면에는 일제강점기부터 홍천댐 예정지로 정해놓은 곳이 있다. 서면 모곡리 협곡이 바로 그 예정지였다. 서면은 개발사업은 물론 새마을 사업까지도 제쳐놓고 진흙 부뚜막에 시멘트 바르는 것조차 못하게 하니 주민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듯 고조돼 있었다. 면민 대다수는 빨리 보상을 받아 서면을 떠나는 것이 목표였다.

결국 서면 전체와 양평군 단월면 일부, 춘천시 남산면 일부, 북방면 일부가 물에 수장되는 댐 건설 대통령 후보 공약이 나왔다. 댐이 준공돼 만수위가 되면 홍천읍 연봉다리까지 물이 차오른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때 당시 노태우 여당 후보가 홍천댐 건설을 1989년도에 착수하겠다는 공약을 홍천 유세에서 공포했다. 보상은 시가로 후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면민들의 원성이 얼마나 컸으면 공약을 했겠는가? 서면 면민들의 마음은 들떠있었다. 1988년 5월26일 이상룡 강원도지사께서 취임했다. 88올림픽 준비, 제17회 세계잼버리대회 개최 준비 등 산적한 도정 현안이 도지사 취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새해 정부예산에 반영될 홍천댐 건설 보상 문제의 처리는 시급한 과제였다.

이상룡 지사께서는 홍천댐을 막으면 춘천은 고도(孤島 외로운 섬)가 된다는 논리를 만들어 대통령 공약을 취소시키기로 작정하고 청와대, 국무총리실, 건설부를 찾아다니며 대통령 선거 공약사업에서 홍천댐 건설을 제외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있었다. 홍천댐 건설 계획이 살아있는 한 담수지역은 물론이고 그 주변 지역까지도 교량 건설, 도로 확포장, 제방 축조, 농업용 시설 설치 등 주민들이 염원하는 각종 사업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홍천댐 건설 방침을 변경하고자 끈질기게 노력했고 건설부로부터 다음과 같은 회신을 받아낸 후 정체됐던 서면지역 개발 사업은 본격화됐다.

‘강원도 홍천군 서면에 계획 중인 다목적 댐 건설은 90년대 수도권의 용수수요에 대비해 제6차 경제사회 발전 5개년 계획사업 및 제2차 국토개발 종합계획 사업으로 개발코자 추진해 왔으나, 사회적 경제적 여건변동에 따라 한강유역의 용수수요를 재검토(88년~89년)한 결과 2000년대에 댐 건설을 재검토코자 함을 강원도에 통보합니다. 댐30522-9275(90.4.21)’

이상룡 지사께서는 위와 같은 회신을 통보받고 팔봉산 국민관광지, 대명 비발디파크를 유치해놓고 1991년 초부터 2년 3개월간 건설부 차관으로 근무하면서 홍천댐 건설의 어려움을 이해시켜왔다. 그러나 댐 건설 적지(適地)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홍천군민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당시 도청 출입 기자인 김중석 강원도민일보 사장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당시는 중앙집권시대였고 집권 여당의 후보 대통령 공약사항이었으니까 공약을 뒤집는다는 것은 거의 힘든 문제였지요. 그때 이상룡 지사께서는 지방의 논리를 만들어 풀어나갔습니다. 워낙 행정에 달인이고 지방의 논리를 잘 아시는 분이니까 아무리 대통령 공약 사항이라도 강원 도정의 책임자로서 바꿔야겠다는 각오로 청와대를 상대로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직접 중앙정부를 올라가고 언론을 통해 홍보하고 지역주민을 설득하신 끝에 1990년 4월 건설부로부터 2000년대에는 건설하지 않고 그 이후에 가서 검토하겠다는 약속을 공문으로 직접 받아오게 됩니다. 지금 같이 지방자치시대가 아닌 중앙집권시대에 특히 임명직 지사로서 큰 무리 없이 중앙정부의 말을 잘 들어서 승진해가길 바라던 다른 도지사들과 차별화된 진정 강원도를 생각하는 그런 도백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위에 서술한 바와 같이 이상룡 지사님은 고향 사랑이 남다르셨다. 건설부 차관 시절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때문에 강원도 석탄산업이 큰 위기를 맞고 있을 때 강남구 신사동 자택 난방을 연탄으로 계속 유지해 강남구 환경미화원들의 화제가 된 일화도 있다. 임명직 공직자로서 인사권자의 의도대로 예고 없이 자리를 떠나야 하는 현실 속에서 이상룡 지사님은 아마도 도지사직에 연연하지 않았던 것이 입증된 것이다. 그 시절 대통령의 결심을 바꾸는 것은 허술한 논리로는 감히 상상을 못 하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오늘날 서면이 건재하게 존재하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상룡 전 강원도지사님과 같은 공직자가 홍천에도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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