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홍천은 영서중부지역서 손꼽히는 군이다. 땅 면적은 군 단위 전국에서 제일이고 인구 또한 도내 18개 시·군 중 시를 제외하고는 제일 많다. 전국에서도 그리 빠지지 않는 군이다.

홍천군의 인구가 제일 많았을 때는 1965년도로 13만 5천여 명이었다. 당시 기관장(특히 군수)들은 연설을 할 때면 의례히 “14만 군민 여러분” 하던 것이 필자의 귀에 생생하다.

그러나 전국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우리 군은 현재 7만 선을 조금 넘고 있다. 때문에 군정의 최고 책임자들은 인구증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귀향·귀농·귀촌 인구가 꾸준히 늘어 이들만의 숫자도 1만여 명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물론이고 우리 군의 문화적 유산과 그 활용방안 등에는 가슴을 열고 대화할 곳도 많지 않고 사람도 없다.

홍천군은 신라나 고려 조선 초기는 생략하고 구한말에서부터 일제강점기 때만을 살펴봐도 변화가 많다. 6.25 한국전쟁 때에는 순수 농업이 산업의 주체를 이뤘다. 1960년경에는 95%가 농민이었다. 주민도 상당수 토착민이었으나 6.25 직후부터 현재까지 절반 이상이 외지인이다. 상공업을 위해 이주한 사람들도 많지만 직업군인에서 제대한 후 계속 눌러앉은 군민이 많다.

1910년을 전후해서 홍천군은 10개 면이었으나 면소재지와 지역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우선 인제군 쪽으로 상남과 미산이 홍천이었으나 인제군으로 붙었고 홍천군 남면의 상오안리가 홍천읍으로 편입됐다. 춘천시 동산면 북방리가 홍천군으로 편입됐고 홍천군의 상창봉리가 횡성으로 갔다.

이전에 동면은 원래 1910년경 좌운리에 연귀미면이 있었고 현재의 속초리 소재 동면은 그 후 연귀미면의 상당부락이 횡성으로 갈라지면서 생겼다. 좌운리의 연귀미면은 현재 횡성군 갑천면 일부인 병지방리와 공근면 상동리와 부창리 가곡리 행정리 상·하창봉 도곡리 일대까지 홍천군에 편입돼 있다가 1917년경에 횡성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돼 떨어져 나갔다.

현재 면 이름은 홍천군청 소재지를 중심으로 동쪽엔 동면 북쪽은 북방면 남쪽은 남면 서쪽은 서면 등으로 명명되었다. 비록 우리 군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다. 행정구역은 이렇고 여기에 따로 문화의 발전을 찾아야 하겠다.

한서 남궁억 선생은 독립운동가요 교육자요 종교인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김규식 박사는 대한제국 임시정부 요인으로 지금의 부총리 격의 요직을 맡았었다. 화촌면 구성포리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그의 집안이 지금도 홍천읍과 화촌면에 거주한다. 이외에도 이재학 국회 부의장 성낙신 청년운동가 허만훈·이종춘 도의회 의장 등이 있다.

문화적으로는 세계적 무희 최승희가 남면 제곡리 출신이다. 지금 당장은 친일행적과 월북인으로 지목돼 있어 각광을 못 받지만 세계적인 무용가임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예술인이다. 그가 다시 빛을 본다면 홍천에 세계적 무용 한류의 성지를 만들어 세계 아이돌 가수의 요람터로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현존작가 홍운 전상국 소설가는 우리나라 문인의 대가다. 화천군은 이외수를 초빙 감성마을 조성에 성공했다. 요즘은 이 작가가 지역에 물의를 일으켜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홍천출신으로 세계적 화가 전광영 화백도 있다. 특수미술 예술가로 유명한 백남준(작고)에 버금가는 명성으로 그의 미술관을 지으면 세계 그의 애호가들이 올 것이다. 그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더 유명한 자다. 그는 한지와 특수재료 플라스틱 등을 이용한 미술가이다. 몇 년 전 작고한 박석환 화가도 전국에서 유명하다. 그의 작품 수백 점이 어느 창고에선가 잠자고 있다. 모두 홍천 출신들이다.

이미 고인이 된 예술문화인들의 작품을 발굴 보존하고 생존 작가들은 지원해서 우리 홍천의 문화를 찬란하게 빛내고 꽃 피워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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