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근
홍천 겨릿소 밭가는 소리 전승보존회장

우리지역 홍천에는 25년(4반세기) 만에 완공된 교량이 있었다. 어떤 연유로 4반세기란 긴 세월을 거쳐 완공되었는지 홍천군 서면 면민들도 기억에서 잊혀졌을 것 같다. 근대에는 교량 하나 건설하는데 1~2년이면 완공을 하는 시대지만 반곡교가 완공되기까지의 기막힌 사연을 홍천군민께 알려드리고자 한다. 다음의 내용은 홍천군 서면 두미리에 고향을 두고 계신 이상룡 전 강원도지사(26대·29대), 고용노동부 장관을 역임하신 어른의 증언을 바탕으로 내용을 정리하여 표현했음을 밝혀둔다.

이상룡 전 장관님 고향은 홍천군 서면 두미리이다.
춘천, 홍천, 양평, 가평까지 각각 70리. 국도까지 나가는데 각 40리. 홍천강을 사이에 두고 춘천과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흉한 산골이다. 지리적으로는 춘천-여주를 연결하는 직선상에 위치하고 있어 6·25동란 때는 춘천 이북 주민들의 피난길이었으나 강을 건널 다리가 없어서 우리 측 피해가 컸던 곳이다. 또한 홍천댐 예정지라는 이유로 왜정 때부터 지역발전을 가로막고, 주민들의 원성을 쌓아 올린 지역이기도 하다.

6~70년대 도내에서 제일 긴 다리
나는 1963년 초 강원도 재정과에서 내무부 재정과로 옮겼다. 해마다 실시하는 CPX에는 필수요원이었다. 국방부와 협조하여 춘천-홍천 서면-여주 연결선을 ‘주민 이동로’로 지정하고, 홍천강의 도강문제 해소를 위한 285m짜리 교량가설 계획을 마련한 후 1966년 내무부 소관 지방교부세를 지원하여 교량 건설에 착수했다.

반대에 부딪혀
그해 여름의 일이다. 참으로 뜻밖의 분란이 생겼다. 홍천 출신 국회의원 L 씨가 찾아와 “지역 출신 국회의원인 내가 모르는 다리 공사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재정과장에게 심한 항의를 한 것이다. 그 항의는 차관 장관에게까지 이어졌다. 나는 그 국회의원이 돌아간 후에서야 과장으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 일을 어쩌나…… 교각만도 19개인 큰 교량인데……. 걱정이 태산 같았다. 당시 내 나이 서른셋…….

지역 국회의원이 반대하는 다리를 정부가 지원한다? 내무부 내의 간부를 설득하여 계속 지원하는 문제는 대단히 어려운 걱정거리였다. 나는 고민 끝에 L 의원을 찾아갔다. “내무부 재정과장, 내무부장관에게 사과를 하십시오. 내일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만약 사과를 안 한다면 교량공사는 중단하고, 나는 공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그 후 문제는 L 의원이 모두 책임져야 합니다” 라고 통보식으로 내뱉고 돌아왔다. 다음날 오후 L 의원이 내무부에 찾아와 사과했고, 공사는 계속되었다. 워낙 큰 공사여서 70년까지 5년을 지원했으나 교각 19기를 세웠을 뿐 상판은 3경간만이 설치된 상태였다.

넉가래 다리……. 20여 년을 일방통행
1971년은 대통령 선거의 해였다. 이번에는 강원도 지원을 받으려고 A 지사님을 찾아갔다. “선거를 앞두고 지역주민 정서가 매우 안 좋습니다. 다리 상판을 좁혀서라도 선거 이전에 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강원도에서 지원해주십시오” 라고 간곡히 건의했다. 이렇게 해서 교각 중앙에 한 차선 넓이의 상판을 만들고 선거 전에 임시 개통을 한 것이다. 285m짜리 소위 ‘넉가래 다리’가 일방통행을 시작한 것이다.

결자해지
그 후 20여 년. 임시 개통된 넉가래 다리는 변함이 없었다. 상판 양옆의 앙상한 철근은 녹이 슬었고, 가설 난간은 바람에도 날릴 듯 위험을 안고 있는 국내 유일의 일방통행 교량으로 버텨온 것이다.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다음 해 10여억 원을 투입하여 집념의 다리가 도지사인 내 손에 의해 완성되었으니, 오늘의 반곡교가 그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결자해지’란 용어가 어울릴지 모르겠다.

여기까지가 어른의 증언이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 있다. 30대 초반에 고향을 떠나 공직에 여념이 없었음에도 논리를 만들어 국도가 아닌 지방도 교량을 국가 예산으로 건설하겠다는 이상룡 전 장관님의 남다른 고향 사랑을 우리는 진정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반곡교 일명 넉가래 다리는 영원히 사라졌다. 지방도 70호선 홍천군 서면-춘천시 남산면을 연결하는 신공법의 다리가 완공되었기 때문에……. 홍천군 서면 면민 모두가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끝맺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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