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2-103]

우리 선현들이 봄을 두고 쓴 작품은 많다. 그렇지만 그 느낌이나 감회는 다 달랐다. 활기찬 봄을 만끽하리라는 느낌이 있는가 하면, 깊은 감회에 찬 나머지 실컷 울고 싶다는 느낌도 받는단다. 봄은 생명 잉태의 계절이다. 봄은 움츠렸던 어깨를 쫘악 펴는 계절이고 겨우내 움츠렸던 온갖 생물들이 약동하는 계절이다. 몸에 부딪치는 짜릿한 봄이 되고 마음 상할 일들이 하도 많았으니, 꾀꼬리에게 내 마음 상할 일 실컷 주어 울게 하리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感春(감춘) / 상촌 신흠
벌은 꽃을 빨고 제비는 진흙 물고
깊숙한 뜰에는 푸른 이끼 수북한데
봄 되니 상할 일 많아 꾀꼬리를 울게 하리.
蜂唼花鬚燕唼泥      雨餘深院綠笞齊
봉삽화수연삽니      우여심원녹태제
春來無限傷心事      分付流鶯盡意啼
춘래무한상심사      분부류앵진의제

꾀꼬리에게 내 마음 상할 일 실컷 주어 울게 하리라(感春)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벌은 꽃을 빨고 제비는 진흙을 물고 오는데 / 비가 갠 깊숙한 뜰엔 푸른 이끼가 수북하다네 // 봄이 되니 마음 상할 일들이 하도 많나니 / 꾀꼬리에게 내 마음 상할 일 실컷 주어 울게 하리라]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봄날에 느낌이 있어서]로 번역된다. 봄날만 되면 마음 상할 일이 그렇게 많았던 모양이다. 흔히 이를 상춘傷春이라고 했다. 임을 떠나 보내놓고 마음 상했던 일, 봄이면 찾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렸지만 끝내 오지 않았던 일, 꽃구경이나 봄나들이 가지 못한 일 등등 마음 상할 일이 참 많다.

봄만 되면 아마 시인도 그랬던 모양이다. 벌은 꽃을 찾아 꿀을 빨고 제비는 진흙을 물어 집을 짓고 있는데, 비가 갠 깊숙한 뜰에는 푸른 이끼가 수북하다는 시상이다. 앞의 구는 무언가 새로운 착상으로 봄을 준비하고 있는데, 뒤의 구는 너덜너덜 수북한 이끼를 대비시켜서 대구를 형성시켰다. 대구적인 시적 착상이란 멋을 일구어 냈다.

화자는 봄만 되면 허구한 날 속상할 일에 대한 자기 의지를 털어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봄이 되니 마음 상할 일들 많았으니, 마음 상할 일들을 몽땅 모아 꾀꼬리에게 주어서 실컷 울게 했으면 좋겠다는 시상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털어놨다. 속이 상하면 응당 실컷 울기라도 한다면 마음이 풀리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대리만족을 취하고 싶었다는 착상이다. 멋이 나는 비유법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벌은 꿀을 빨고 제비는 진흙 푸른 이끼 수북하네, 봄 되어 맘 상할 일 많아 꾀꼬리에게 울게 하리’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583년 당시의 정권을 장악한 동인으로부터 이이의 당여라는 배척을 받고 겨우 종9품직인 성균관학유에 제수되었던 인물이다. 그는 곧 경원훈도로 나갔다가 광주훈도를 거쳐 사재감참봉이 되었다 한다.

【한자와 어구】
蜂: 벌. 唼: 빨다. 花鬚: 꽃의 수염. 꽃술을 뜻함. 燕: 제비. 唼: 쪼아 먹다. 泥: 진흙. 雨餘: 비가 개다. 深院: 깊숙한 뜰. 綠笞: 푸른 이끼. 齊: 가지런하다. 곧 수북하다. // 春來: 봄이 오다. 無限: 많다. 傷心事: 마음을 상할 일. 分付: 부탁하다. 流鶯: 꾀꼬리. 盡: 다. 실컷. 意啼: 울다. ‘울게 하다’는 사역의 의미.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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