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우리들 주변에는 참으로 별별 사람들이 다 모여 산다. 많은 재력으로 부를 누리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온갖 권력으로 이권을 챙기고 아울러 부를 창출하는 모리배들. 재산은 넉넉지 않지만 부지런함과 양심적으로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 이외에도 많은 부류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결국 크게 분류한다면 두 분야로 구분된다. 즉 행복한 사람들과 불행한 사람들. 그리고 평온한 사람들이다. 그러면 행복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돈만 많으면 행복할까? 아니다. 반대로 돈이 없으면 불행할까? 그것도 역시 아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돈이 많으면 불편이 덜할 뿐이고 돈이 없으면 불편이 많을 뿐이다. 사람 사는데 돈이 다가 아니고 그 반대로 돈이 없다고 인생이 아주 끝나는 것도 아니다. 결국은 마음먹기에 따라 행·불행이 온다. 다만 돈이 많으면 편한 생활과 욕구불만을 쉽게 해결할 수 있고 가난하면 힘들고 하고 싶은 일을 맘대로 못하는 불편함이 있을 뿐이다. 건강을 말할 때 우유배달에 비유하는 말이 있다. 우유를 받아먹는 사람보다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우리의 주변에 많다. 평범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가정에서 애들 목소리가 싱그럽고 가족 모두가 건강하며 나이에 맞게 제 구실을 다하는 집안의 사람들이 우선 행복한 사람들일 게다. 수십억 수백억 원의 재산을 갖고도 얼굴은 늘 근심걱정과 찡그린 상이고 어떻게 하면 세금을 줄이고(심지어 탈세를 연구하고) 재산을 더 축적하기 위해 부정과 권력대기에 안간힘을 쓰는 노랑이 또는 자린고비 부자들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허나 간혹 그렇지 않은 부자들도 있다. 자기의 본색을 나타내지 않으며 매년 수천만 원 내지 수억 원을 기부하는 기부천사가 있지 않은가. 이들이야 말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최근의 경제소식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세계 71개국 중진그룹에서 무역거래 8위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만큼 잘 산다는 얘기다. 비록 빈부의 차이가 극심하지만 그래도 정부에서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극빈자와 노약자를 위해 막대한 정부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정부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이다. 같은 조건에서도 혹시 혜택을 못 받는 자가 있다면 그들은 불행한 사람들이다. 거리의 걸인이 가장 부러워하는 자는 자기보다 더 많은 일당을 구걸해 버는 자라고 한다. 즉 자기가 만원을 벌면 이만 원 버는 자기의 동료걸인이 제일 부럽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처지 그 반대편에 서서 나 스스로를 한번쯤 바라보면 어떨까? 나는 과연 행복한가 또는 불행한가. 요즘은 고령화사회다. 필자 또한 직장에서 퇴직한지 수년이 됐다. 이순을 지나 고희의 중반 나이다. 오전 9시경 남들이 직장에서 일할 시간에 취미와 건강을 위해 운동(테니스)을 하러 간다. 두어 시간 운동 후 노인복지관에서 실버중식을 하고 귀갓길에 파크골프와 그라운드 골프를 한 시간쯤 치고 집에 온다. 신문과 독서를 서너 시간 하고 역시 취미인 바둑을 둔다. 커피내기로 몇 판 하는데 승률은 반반이다. 석식 후 TV와 독서 그리고 글쓰기로 시간을 보낸 후 취침한다. 이것이 필자의 일상이다.

행복과 불행을 어디쯤에서 찾아볼 것인가. 어찌 보면 아주 평범하고 덤덤한 삶이다. 하기야 사람이 왜 사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 철학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가를 가르치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하는데 수천 년 동안 그 많은 석학자들이 연구했고 현재도 연구하고 있지만 명쾌한 답은 없다. 

행복과 불행 또한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불행인지는 영원한 의문이다. 다만 현실에서 행·불행은 본인들의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물질적인 행복과 정신적인 행복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복해질 수도 불행해질 수도 있다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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