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상의 종류는 참으로 많다. 유치원 때 이미 상 제도가 있어 착하다고 상을 준다. 초등학교에 가면 우등상 개근상 정근상(지금은 상의 이름이 바뀌었음) 등등이 있고 사회에 나오면 표창장 대상 금상 장려상 우수상 등이 있다. 또한 국가에서 주는 훈장도 있다.

상과는 조금 다른 개념의 패가 있다. 우승패 감사패 등이다. 우승패는 운동경기에서 승리했을 때와 문화예술분야 또는 학술경연대회 등에서 우승했을 때 주는 상이다. 감사패는 어느 한 분야에서 우수한 활동을 한 자에게 주최 측에서 주는 말 그대로 감사의 뜻을 담아주는 상이다.

몇 년 전 강원일보 70주년 기념식장에서 필자가 과분하게도 우수독자 감사패를 받았다. 강원도 내에서 6명에게 주는 상이다. 강원일보 전 직원의 일사분란한 회의 준비 속에 베어스호텔 소양홀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간부급 고위직이 명찰을 달고 직접 안내를 하고 모두가 친절한 분위기 속에서 강원일보의 고희잔치를 맞았다. 이 자리에는 강원도 내의 귀빈들이 대다수 참석을 했다. 국민의례가 끝나고 대통령의 영상메세지가 상영된 후 필자를 위시한 수상자들에게 감사패 수여식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필자가 강원일보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60여 년 전 1956년 초다. 중학교 3학년 때 학비를 자체 해결하기 위해 신문배달(동아일보)을 할 때부터다. 친구가 강원일보를 배달해서 동아일보와 강원일보를 서로 바꿔 보게 된 것이 강원일보를 보게 된 최초의 동기다. 그 후 직장에 들어가서는 역시 강원일보와 동아일보 조선일보를 구독했다. 중간에 동아일보를 중단하고 지금은 강원일보와 조선일보 농민신문 세 종류를 정독하고 있다.

상이나 감사패는 받을 수 있다면 일찍 받을수록 더욱 빛나는 것 같다. 필자가 상을 최초로 받은 것은 1949년 봄이다. 초등학교(유치원 없었음) 1학년 때 우등상과 정근상이다. 그 후 초등학교(초등학교) 6년 내내 우등상과 정근상을 탔고 중학교에 진급하고서 최초로 외부인사(당시 학교장상만 탐)의 상인 홍천경찰서장상을 받았다. 필자가 그 당시 홍보용 반공표어 공모에 1등으로 당선돼서다.

그 후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농협은행중앙회)에 공채로 합격해 군·도·중앙회장 등등 많은 상을 받았다. 직장에 있을 때 모범직원 표창을 도지부장이 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상이란 흔한 게 상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주는 것도 아니다. 줄만하니까 주는 거고 받을만하니까 받는 것이다.” 지금도 직장 얘기를 하면 귀에 쟁쟁하다.

필자의 경우 재작년에는 강원문학상을 받았고 작년에는 문화원에서 주는 홍천향토문화대상을 받았다. 이 두 상은 상금이 있는데 전자는 5백만 원이고 후자는 1백만 원이었다. 모두 발전기금으로 기탁했다. 도 문협에서는 거금의 발전기금 전액이 고맙다는 뜻에서 행운의 열쇠(순금)를 만들어 필자에게 줬다. 홍천문화원에서는 기금으로 적립 향후 문화원 발전을 위하여 귀히 쓰겠단다.

모든 상에는 두 가지의 유형이 있다. 상금이 있는 게 있고 상금이 전혀 없는 게 있다. 표창이나 감사패 공로패 등에는 선물은 있어도 상금은 없다. 상에는 또 두 종류가 있다. 상패와 종이증서다. 사실 상패나 감사패 재직패 등등 수많은 패나 상장들이 세월이 가면 보관도 그렇고 값어치도 퇴색해 그 영광의 가치가 퇴색돼 간다. 인간사 한 때의 보람과 영광이라고나 할까?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상은 뭐니 뭐니 해도 대통령 표창이다. 어떤 일을 했던 간에(의례적으로 받는 자도 많다) 대통령 표창은 대단하고 본인의 명예는 물론 가문의 영광이다. 허나 그 상장도 본인이 건재해야지 본인이 없으면 천덕꾸러기 유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상을 받는다는 그 자체는 자랑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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