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에서 양심적 병역기피자들에 대한 대체복무방안을 마련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학식과 덕망이 높으신 분들의 고뇌 끝에 내려진 결정이겠지만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최근 남북의 화해무드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고는 하지만 분단된 조국의 현실 앞에 병역의 의무마저 근간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남자에게 주어진 국방의 의무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꽃다운 나이인 20대 초반에 이행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20대는 혈기가 왕성하고 꿈이 많고 열정이 있는 나이다. 억만금의 황금과도 바꿀 수 없는 때가 바로 이 때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엄한 벌을 받아야 하는 지금도 온갖 편법을 동원해 기피하려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정당하게 군에 입대하지 않고 대체복무가 가능한 길이 열린다면 누가 군에 입대해 젊음과 청춘을 바쳐 나라를 지킬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한다. 군 복부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취업을 해야 하는 시기의 군복무는 젊은 남자들에게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돼 평생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양심적 병역기피라는 용어의 사용에도 문제가 있다. 마치 군복무를 마치는 사람은 양심이 없는 사람처럼 인식될 수 있다. 양심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라고 규정하고 있다. 특정 종교의 신념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것을 양심적 병역기피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한때 개그 중에 ‘소는 누가 키우냐’는 말이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대체복무제도가 정착된다면 나라는 누가 지킬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시대상황은 인공지능 시대로 최첨단 과학화된 무기 체계가 예전과 같이 많은 병력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지만 그래도 무기를 다루는 군인이 있어야 나라를 수호할 수 있는 것이다.

남북이 통일 되어 군축이 이뤄져 모병제로의 전환이 될 때와 현재의 징집제는 확연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은 자유분방하고 이기적이어서 누구에게 구속되거나 통제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국가관도 투철하지 않다. 이러한 때에 양심적 병역기피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도 마련은 균형을 잃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 뻔하다.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통일이 된다 해도 일정 수준의 군대는 항시 유지되어야 한다. 우리의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 등은 잠재적 도발 국가들이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들이 입증해 주고 있다. 튼실한 국방력을 유지해야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안보에서 가장 위험한 적은 방심이다.

현재 종교적인 신념에 의해 군 입대를 거부하거나 아예 총을 잡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특정 종파의 신도들로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앞으로 대체복무가 허용된다면 이 종파의 신도는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며 종교 외적인 요인으로 양심적 병역기피자들이 대거 늘어날 것은 너무나 뻔한 이치다.

한때 ‘군에 갔다 와야 사람 된다’는 말이 있었다. 단체 생활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습관을 익히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할 줄 아는 기회가 되며 정신적으로도 긍정의 마인드가 길러지고 신체적으로도 건강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오히려 군복무가 성장을 가로 막는 장애로 인식되고 있다.

장차 정상적으로 군복무를 마치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세상이 올까 걱정이다. 법의 판정은 엄정하다. 분명 대체복무 방안이 마련될 수밖에 없다. 양심적 병역기피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도를 반대하지만 기왕에 만들 것이라면 군복무를 마친 사람이 당당할 수 있도록 또 대체복무를 마친 사람도 부끄럽지 않도록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대의는 평등이다. 인생의 황금기에서 젊은이들에게 불평등한 요소가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교도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모두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고 하루빨리 통일을 이뤄 병역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길 기대해 본다.

이영욱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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