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2-84]

고향 장흥 유치에 있는 보림사를 지나가면서 감회에 젖은 나머지 시상을 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풍을 복고해야 된다는 시풍으로 시를 썼던 삼당시인의 한 사람인 시인은 시상의 비유법으로 덧칠해 보이는 강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도 오언으로 물들인 짤막한 구성에서 하고 싶은 말을 힘껏 다 토해냈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나뭇잎이 모랫길에 칭얼대 울고 있고, 차가운 시냇물은 어지러운 산을 달리며 흐른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過寶林寺(과보림사) / 옥봉 백광훈
떨어진 나뭇잎이 모랫길에 울어 대고
차가운 시냇물은 산을 달려 흐르는데
저문 날 경쇠소리는 구름사이 들리네.
落葉鳴沙逕 寒流走亂山
낙엽명사경 한류주란산
獨行愁日暮 僧磬白雲間
독행수일모 승경백운간

스님의 경쇠 소리가 흰 구름 사이로 들리네(過寶林寺)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1537~1582)은 삼당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떨어지는 나뭇잎이 모랫길에 울고 있고 / 차가운 시냇물은 어지러운 산을 달리며 흐르는구나 // 혼자 걷다 보니 시름겨운 날도 저물어 가고 / 스님의 경쇠 소리가 흰 구름 사이로 들리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보림사를 지나면서]로 번역된다. 보림사는 전남 장흥 유치에 있는 보림 총림의 천년고찰이다. 고향을 찾는 시인은 보림사를 지나면서 울컥 우러나오는 시심을 억제하지 못했을 것이다. 흐르는 세월 앞에 스님의 경쇠소리가 흰 구름 사이로 들렸으니 늦게 고향을 찾는 죄스러움과 세월을 원망하는 하소연이 가슴을 울리는 듯한 시상 전개의 모습이다.

시인의 시상을 보면 자연을 빗대는 시적인 상상력은 객관적 상관물을 비유법 덩치로 치장하는 모습 속에 빠져들게 한다. 떨어지는 나뭇잎이 모랫길에서 울고 있고, 차가운 시냇물은 어지러운 산을 마구 달리면서 흐른다고 했다. 나뭇잎이 모랫길에서 운다거나 시냇물이 산머리와 허리를 마구 감싸면서 돈다는 비유법의 시상 모습이다.

화자는 시상을 잠시 쉬라고 가만 놔두지 못했음을 살펴본다. 무심코 보림사 앞을 혼자 걷다보니 시름겨운 날도 점차 멀리 저물어가고 스님이 독경하면서 암송하는 장단에 맞춰 읽는 경쇠 소리만이 흰 구름 사이로 들린다고 했다. 꼭 스님이 아닐지라도 독실한 해탈解脫의 한 모습을 보는 순결성이 보이는 시상 속에 숨어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나뭇잎 모랫길 울고 시냇물 산을 달리네, 시름겨워 날 저물고 구름 사이 경쇠 소리’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옥봉(玉峰) 백광훈(白光勳:1537~1582)으로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박순의 문인으로 13세 되던 해인 1549년(명종 4) 상경하여 양응정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이 때 무이동에서 이이, 송익필, 최립 등의 팔문장과 수창하였고, 이 때문에 팔문장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落葉: 낙엽. 떨어지는 잎. 鳴: 울다. 울리다. 沙逕: 모랫길. 寒流: 차가운 시냇물. 走亂山: 어지러운 산을 달리다. 산을 어지럽게 달리다. // 獨行: 혼자 걷다. 愁日: 시름에 겨운 날. 暮: 저물다. 僧: 스님. 磬白: 경쇠소리가 들리다. 雲間: 그름 사이로 들리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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