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문화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돈이 많다고 큰돈을 들여서 으쌰으쌰 만들어 놓아도 그것이 문화재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한 민족의 유구한 정신문화와 얼이 깃들어야 하며 그만큼의 세월이 가야 한다. 결국 조상들의 숨결이 배어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호에 이어 두 번째 홍천에 대한 문화재 얘기다. 문화재를 말하려면 그 인근의 지형이라든가 발전상태 등을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현재 홍천읍 희망리 군의회 사무실 옆에 탑이 두 개가 있다. 사자석탑은 원래 내촌면 물걸리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고 그 옆 삼층석탑은 홍천초등학교 뒤 언덕 보리밭 가운데(1953년 경)에 있던 것이 1960년대 이곳이 주택지로 개발되면서 잠시 현 교육지원청 옆 정원에 있다가 다시 현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50년대는 교육청이 군청 내에 교육과로 있다가 분리됐고 현 교육지원청이 있기 전에는 홍천면사무소 건물이 최초로 있었다. 그 후 홍천읍으로 승격되면서 현 꽃뫼공원에 와가목조 건축물로 사무실을 지었다가 헐고 다시 현대식 2층을 지어 사무실로 사용하다 군청이 신청사(현재 위치)로 이전하고 구 군청 자리에 읍사무소가 임시로 있다가 현재의 구 경찰서 터에 신사옥을 짓고 이주한 것이다.

지난 호에 게재했던 당간지주 주변도 많이 변했다. 그 주변을 거슬러 가보면 현재 K컨벤션웨딩홀(전 경동예식장) 전에 홍천종합터미널이 있었고 그전에 상당기간 공터로 있었으며 그 이전 1953년경에는 홍천군헌병대가 있었다. 초기 건물은 군 천막이 있었고 일부 시멘트블록으로 몇 채 있었다.

헌병대 규모는 매우 컸으며 가운데는 연병장이 있고 좌우로 숙소와 근무처 등이 있었고 지금의 GS마트와 예식장 중간에 독신장교 숙소인 영관숙소가 있었으며 도로변 쪽으로는 군부대 영외PX가 2000년 초까지 있다가 연봉리 통신중대 자리로 이전했다.

현재 읍사무소 터는 일제말기부터 경찰서 터고 현재 온누리약국과 서울정형외과 건물 터는 웨딩홀 윗부분으로 강가로 나가는 오솔길이고 강쪽에는 시내서 나오는 화장실의 인분을 퍼다 놓는 구덩이가 있어 변을 숙성시켰다가 거름으로 쓰곤 했다. 장마가 나면 강물이 밋밋한 언덕을 넘어(당시에는 제방이 없었음)와 도로 가까이까지 침수가 됐다.

홍천주변에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비석이다. 현재 연봉리 무궁화공원 광장 옆에 10여개가 서있는데 너무 외지고 비석이 설만한 위치가 아니다. 이 비석은 원래 홍천초등학교 입구(학다리서 북쪽으로 약 50m 지점)에 있었는데 도로확장으로 구 군청 앞 현 소공원(옛 연못 터) 옆으로 옮겼다가 현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문화재 관계하시는 분들과 공론해서 적절한 곳으로 다시 옮겼으면 한다. 문화재는 원래 제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옮긴다면 그에 합당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홍천지역에서 없어진 문화재도 복원할 것은 복원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표지판이라도 세웠으면 한다. 북방면 송학정과 검율리 소재 이괄의 말 무덤 및 현 현대운수 주차장 인근의 말 무덤, 철정리 향교골 향교 터, 갈마곡리 사미정 위 200m 지점의 범파정 터, 북방면 하화계리의 중석기시대 유물 발굴 터 등 모두가 보존을 해야 하지 않나 여겨진다. 좀 더 세밀한 것은 역사학자들(문화재관리위원)의 몫으로 돌리며 우리만 있는 문화재라도 잘 돌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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