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종족번식의 인위적 제한은 결국 인간 스스로가 저지른 오판이기도 하다. 문화와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편의주의에만 매달리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가 점차 많아지게 됐다.

얼마 전 언론보도에 보면 우리나라 30대 모 재벌의 3남이 변호사들(로펌 소속이라 함)에게 폭력을 가하고 이것이 사회문제가 되자 그 총수는 대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를 했고 그 당사자는 이번만이 아니라 이미 서너 차례의 폭력 경력이 있다고 한다. 이번에도 보통사람의 아들이라면 구속하고도 남으나 피해를 입은 변호사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하에 불구속으로 끝났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모범은 커녕 갑질만 하다가 제 애비까지 개망신을 시키니 이런 자식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어쨌든 자식이란 울타리다. 있으면 보람도 있지만 귀찮고 골칫덩어리고 없으면 허전하고 사는 의미가 퇴색한다. 원래 인간은 자신과 가족(아내 자식 등)과 사회와 국가의 구성체 속에서 살게 마련이다. 이 틀을 벗어나면 정상인이라기엔 뭔가 부족한 게 있다.

생존하는 현재의 학자이고 교수이며 유명 강사인 김동길 박사는 아예 독신으로 90평생을 살고 요즘도 강의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그의 누나인 김옥길(전 문교부장관이자 이화여대 총장) 박사 역시 독신으로 살다가 작고했다. 이 두 분은 친남매다. 두 사람은 서로 누나만한 여자가 없어서 결혼을 안 했고 동생만한 남자가 없어서 결혼을 안 했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두 분 다 대단히 훌륭하신 현대인의 표상으로 유명인사다. 단 후손이 없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두 분은 혼인을 안 해본 자들로서 지상최대의 행복을 누렸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아이들을 키워봐야(두 분 다 교육계에 몸담았지만) 인생을 제대로 알 텐데 이들에겐 제 자식 키우는 희로애락의 경험은 없었을 터이니 말이다.

결혼을 했을 때 항렬로 보면 부부는 무촌이고 자녀와는 1촌, 형제와는 2촌이다. 그 외는 짝수 홀수로 삼촌, 사촌 등 서열이 매겨진다. 결국 자식과 부모는 벌써 1촌이다. 부부의 합작품인데도 한발 건너뛰었다. 필자는 1남2녀가 있는데 모두 타지에서 독립해 살고 있다. 맏딸은 대전서 부부교수이고 둘째는 서울서 장학사로 몸담고 있다. 외아들은 의료인(정형외과 의사)으로 경기도 시흥시의 대형병원에서 근무한다. 늘 바빠서 한 달에 한 번도 주기적으로는 못 온다. 제사나 명절 때 아니면 특별한 때나 만난다.

주로 그 애들이 홍천으로 오고 필자는 가끔 그네들의 집을 방문한다. 긍정적으로 보면 서로 불편함이 없이 각자의 생활을 하니 좋은 것 같기도 한데 또 한편으로 보면 자식이 뭔 소용이 있나 가족이란 단어가 상실된 삶이니 삭막한 나날이 지속되는 거다. 이는 비록 필자만 느끼는 상황은 아닐 게다.

지방에서는 대다수의 자녀들이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한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방(고향)에는 늙은이들만 남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물리적으로 힘든 일이 있다 해도 정신적으로는 풍요로운 가정 형태를 이뤘으면 한다. 부모와 자녀지간에 서로가 역지사지(입장을 바꿔서)의 입장이 되면 상호간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그렇게 쉽지만은 아닌 것이 자녀와 부모의 관계다. 더 세분화한다면 부부와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 자식형제간 관계가 만만치 않다. 시각을 조금만 달리해 생각하고 이해한다면 수월할 텐데 그게 그리 쉽지가 않다. 그래서 자식은 겉을 낳지 속(마음)을 낳겠느냐는 말도 있다. 하여튼 간에 무자식이든 유자식이든 사람의 팔자에 속한 것인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사라 하겠다.

인간이 지구상에 존속한지 수만 년이 넘는다고 한다. 그동안 숱한 문명과 문명이 충돌했고 문화와 문화가 상존했다. 여기에 가정사 또한 수없이 변해왔다. 웬만한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수많은 종교가 탄생했고 성인과 철학자와 학자들이 업적들을 남기고 지금도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자식이 있거나 없거나를 떠나서 현실에 적응하는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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