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2-70]

뿌옇게 안개 낀 강기슭에 모래톱이 보이고 해오라기 한 쌍이 우두커니 앉아 있다. 아침 일찍부터 먹이 사냥을 하고 있겠지만 먹잇감은 나타나질 안는다. 버드나무는 푸릇푸릇 봄 멍이 들기 시작한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가 서서히 걷히는 지 멀리 텃새들이 아침부터 멱을 감는다. 춘경春景이 나들이 나가는 자연의 절경이다. 누대에 가득한 버들가지 문 앞에 드리워져 푸른 그늘 안개 같아 마을은 보이지를 않는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江村春景(강촌춘경) / 죽향
누대에 버들가지는 문 앞에 드리워져서
푸른 그늘 안개 같아 마을은 안 보이고
목동의 피리 소리에 안개비가 내리네.
千絲萬樓柳垂門 綠暗如煙不見村
천사만루류수문 녹암여연불견촌
忽有牧童吹笛過 一江煙雨自黃昏
홀유목동취적과 일강연우자황혼

온 강에 안개와 비, 저절로 황혼에 내리는구나(江村春景)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죽향(竹香)으로 알려진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누대에 가득한 버들가지 문 앞에 드리워져 / 푸른 그늘 안개 같아 마을은 보이지를 않네 // 갑자기 목동이 나타나 피리 불며 지나가는 길인데 / 온 강에 안개와 비, 저절로 황혼에 내리는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강촌의 봄 경치에 취해서]로 번역된다. 강촌의 봄 경치는 흔히 보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인 수가 많다. 봄의 전령이나 되는 듯이 버들가지가 치렁치렁 몸매자랑을 하면서 마을 앞에서 봄바람에 너울너울 춤을 춘다. 꼬마 녀석들이 나와서 버들가지를 살짝 만지면 아프다고 소리라도 칠 양으로 흔들거리는 모양은 장관을 방불케 한다.

시인은 이와 같은 버들가지의 눈치작전에 휘말리지 않고 마을 앞에서 몸매자랑, 춤 자랑이 한창이다. 그래서 시인은 누대에 가득한 버들가지는 문 앞에 드리워져 푸른 그늘 안개 같아 마을은 보이지 않다고 했다. 파릇파릇 제 자랑이 한창인 가운데 푸른 그늘에 마을을 가리었다고 했다. 제 철을 만났으니 이제는 할 말이 있다는 듯이…

화자는 선경의 시상에 이어 목동의 탓으로 돌리면서 황혼이 내리는 후정의 그림을 그려놓았다. 갑자기 목동이 나타나 피리를 불면서 지나가고 있으니, 온 강에 안개와 비로 인하여 저절로 황혼에 내리고 있다고 했다. 온 강이 버드나무의 춘경 때문에 안개와 비로 범벅이 되었다는 강촌의 봄 풍경은 점점 무르익어 가고 있음을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버들가지 드리워져 마을은 보이지 않네, 피리 불며 지난 목동 황혼 내린 안개비에’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여류시인인 죽향(竹香:?~?)이다. 호는 낭간(浪?), 용호어부(蓉湖漁夫)이다. 19세기 전반에 주로 평양에서 활동하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녀에 대한 언급은 신위의 <경수당집>, 이만용의 <동번집>, 김정희의 <완당집> 등 여러 문집에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알 수 있다.

【한자와 어구】
千絲: 많다. 가득하다. 萬樓: 많은 누대. 누대. 柳垂門: 버들이 문 앞을 드리우다. 綠暗: 푸른 그늘. 如煙: 연기와 같다. 不見村: 마을이 보지 않다. // 忽: 홀연히. 有牧童: 목동이 있다. 吹笛過: 피리 불며 지나가다. 一江: 한 강. 여기선 온 강. 煙雨: 안개와 비. 自黃昏: 스스로 황혼이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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