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여행의 즐거움은 보고 먹고 듣는 재미라고 한다. 하와이의 대체적인 생활수준은 한국에 훨씬 못 미치는 것 같다. 우리 일행이 묵었던 호놀룰루의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홀리데이인 익스프레스 호텔(45층) 역시 신축건물인데도 외형은 그럴듯한데 객실은 국내의 모텔 수준이었다. 이에 비해 대한항공에서 운영하는 호텔은 시설이 최고급이어서 이곳에서도 인기가 최고라고 한다.

이틀째 되는 날 일행은 하와이 북쪽 섬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제일 큰 빅아일랜드 섬은 하와이 국내 비행기로 약 50분 날아서 이동했다.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거리와 비슷했다. 화산국립공원과 아카카폭포를 관광했다. 이 아카카폭포는 물줄기가 가로 40여m에 높이가 135m나 되며 미국의 3대 폭포 중 하나라고 한다. 이날은 겨울장마인데도 비가 많이 와서 수량이 대단한 흙탕물 폭포로 장관을 이뤘다. 비가 너무 와서 일회용 우비를 공급받았는데 얼마나 엉터리 싸구려인지 입을 때 이미 반은 찢어졌다. 중국산이라고 했다.

화산국립공원은 지금도 김이 여기저기서 모락모락 나고 유황냄새가 짙게 났다. 이 화산은 1971년에 대폭발을 했고 그 용암으로 원주민이 800여 명이나 희생을 당했으며 지금은 활화산으로 남아 있는데 그 폭발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다. 용암이 식어서 생긴 화산석이 대평원을 이뤘는데 그 끝이 지평선을 이뤄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 수십km는 됨직했다. 이 화산이 폭발 전에 통행됐던 시멘트 포장길도 대부분 사라지고 불과 몇 십m만 간간이 남아있다. 용암의 흔적 틈에서도 고사리는 잘 자라서 푸른빛을 볼 수 있었다. 마그마는 땅뿐만이 아니라 바다도 많이 메웠고 바다와 육지 간에는 백여m가 넘는 급절벽을 이뤄 흰 파도만 절벽을 철썩철썩 때리고 있었다.

이곳에는 하와이에서 제일 높은 산이 4015m로 우리나라 백두산보다도 높고 한라산의 두 배에 가까운 산이 있었다. 이곳은 땅은 넓고 비옥하나 늘 화산 폭발 염려에 두려워하고 있으며 우리의 안내는 현지 한인교포인 장순규(36세) 가이드가 빠른 말솜씨로 열심히 안내했다.

일행은 다시 오아후 섬으로 이동해 쿠알로아 목장을 투어했다. 이 목장은 검은 소가 유명하며 개량 양과 말이 어우러져 있고 저지대에는 인공저수지를 만들어 민물새우를 양식해 판매하는데 인기라고 했다. 이 인공새우 최초 개발자는 한국의 고등학교 학생으로 부모를 따라온 이민자로 이 사업을 최초 개발 창업을 해서 성공해 많은 부를 이뤘다고 한다. 계속해서 아름다운 해안을 일주했는데 역시 우리의 제주도도 이에 못지않음을 자부하고 싶었다.

국립공원인 쥬라기공원에서 바람산을 돌아 동굴탐험이 있었다. 이 동굴은 약 500m로 입구와 출구가 별도로 돼있는데 동굴 안에 전시된 각종 무기와 탄약저장고는 2차 대전 때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 당시의 군인용품과 군 개인장비 등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촬영 후 용도 폐기된 촬영세트 일부와 조형물들을 실감 있게 보았다. 원래 이곳은 절벽을 깎아 도로를 만들고 남태평양 바다에서 쳐들어오는 일본해군을 격파하기 위한 대포를 장치했던 곳이라 했다.

이날의 마지막 날 투어는 진주만이다. 이 진주만은 미국의 육·해·공군이 주둔한 군사지역으로 사전승낙을 받아야 하고 검문도 깐깐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을 습격한 것은 1941년 12월 7일 필자가 태어난 지 5개월 후쯤 된 때다. 일요일 아침 일본 항공모함에서 발진된 폭격기와 전투기들이 공습을 감행해 수천 명이 희생됐고 그중에서도 항구에 정박해있던 전함(길이 165m 너비 65m 무게 3만6천톤)이 일본 전투기에 의해 폭격을 당해 불과 8분 만에 깊이 50여m 바닷속으로 침몰됐다. 이 배의 침몰로 1177명의 미 해군이 수장됐다. 지금도 그 배는 인양하지 않고 그대로 물속에 있으며 천여 명이 넘는 20대 전후의 미 해군 장병들이 바닷속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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