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중 홍천소방서장

물, 공기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히 존재해왔기 때문에 우린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날이 많다. 하지만 소홀하게 대해왔던 것들이 후에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결과와 커다란 슬픔의 칼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은 한·중·일 3개국이 참가한 거대하고 참혹한 국제 전쟁이다. 각 나라마다 그 당시의 연호를 따 일본에서는 분로쿠 전쟁, 중국에서는 만력조선전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또 다른 이름으로는 ‘도자기전쟁’이라고도 부른다.

도자기전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조선의 수많은 도공들을 납치하여 그들로 하여금 도자기를 만들게 해 일본의 도자기문화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반면 도자기 선진국이었던 조선은 계속되는 전쟁과 납치 그리고 기술 천대 문화로 도공에 대한 멸시에 의해 도자기 문화가 쇠퇴하기에 이른다.

한편, 납치된 조선 도공들은 강제에 의한 것이었지만 일본 지도층의 관심과 많은 지원 속에 열심히 도자기를 만들게 되었고, 이 도자기에 관심을 갖은 유럽은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며 일본에서 수입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도자기 수출로 막대한 부를 쌓은 일본은 유럽에선 ‘도자기의 나라’로 기억하게 된다.

이렇게 축적된 부와 서양과의 교류는 일본에게 다시 한 번 전쟁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고 우리나라에는 일제감정기라는 암흑기의 시련을 마련해주었다. 이처럼 천대받고 홀대 받았던 도공에 의해 조선과 일본의 운명이 뒤바뀔지 누가 알았을까.

‘안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안전에 대해 매우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계속되는 안전사고에도 놀라는 건 잠시뿐 우린 여전히 안전을 천대하고 소홀히 한다.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11,000건 이상의 주택화재가 발생하지만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율은 30%가 채 되지 않으며 주택화재보험 가입율도 30%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심정지 환자가 매년 3만 명 이상 발생하고 있어 이들을 살리기 위해선 현장에서 일반인의 심장충격기 사용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용률은 0.6%에 불과하다. 또한, 연간 420만대 이상 생산하는 자동차 생산 강국이라 스스로 자찬하면서도 자동차 안전의식이 부재하여 자동차사고 발생 세계2위라는 부끄러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도공을 천대하는 조선의 문화가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를 불러왔듯 안전의식에 대한 소홀은 우리 인생을 암흑기로 이끌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안전을 소홀하게 대하면 필연적으로 돌아오는 것은 사고이다. 내 몸이 다칠 수 있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끔찍한 일을 겪을 수도 있다. 안전한 삶을 살기 위한 우리의 도자기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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