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요즘 불리고 있는 대중음악 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너 늙어봤어? 난 젊어봤다.” 비록 대중음악의 가사 중 한 대목이지만 경험의 중요성을 이처럼 잘 표현할 것이 없을 성 싶다. 이 가사 내용대로라면 젊은이와 노인네가 대화를 하는 도중 신학문이나 지식(상식)에 밀리는 노인 쪽에서 말로는 논쟁이 안 되겠으니까 한마디 던지는 소재다. 왜냐하면 노인은 젊은 날을 살았고 젊은이는 아직 늙어보지 못했기에 절대적인 한마디인 것이다.

흔히 한 가정에서 다 자란 자녀가 있을 때 남녀를 불문하고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사람은 좀 그렇고 서로가 비슷한 처지에서 배필을 맞으면 큰 탈이 없다며 자녀에게 말한다. 이 말은 곧 부모로서 경험해온 바를 체득했기 때문에 일러주는 남녀 사귐의 철학이라 하겠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전쟁터에서 공격하던 기마부대가 적의 유인에 빠져 밤중에 포위가 됐다. 사방이 어두워서 방향을 도저히 잡을 수 없어 갈팡질팡할 때 노장수가 지휘관(대장)에게 말했다. “장군 이대로 있으면 우린 다 죽습니다. 날이 새기 전에 이곳을 탈출해야 합니다.”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하도 깜깜해서 방향자체를 모르지 않나.” “제게 좋은 방도가 하나 있습니다.” “그래? 그게 뭔가?” “제가 타고 있는 말이 늙어서 싸움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지만 아주 영리하고 경험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풀어놓으면 우리 편 본부 군령으로 우리를 잘 인도할 것입니다.”

과연 그랬다. 이 말은 그 장수와 과거에 수많은 전쟁터에서 주인과 같이 싸웠기에 이곳 지리를 잘 알고 있었다. 이 말이 가는대로 따라가 부대는 무사히 포위망을 뚫고 본령에 합류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늙은 말의 경험에 의거해 수많은 장병들이 살아온 것이다.

경험과 체험은 비슷한 말이긴 하지만 그 발생동기가 다르다. 경험은 스스로 해봄으로써 겪은 사안이고 체험은 계획적으로 만들어서 해보는 결과이다. 농사를 지을 때 농부가 고구마나 감자를 직접 심어서 캐는 것은 경험이고 학생들이 남이 심어놓은 고구마나 감자를 캐는 것은 체험이라 보면 적절한지 모르겠다.

우리는 경험에서 역사의 교훈을 잘 알고 있다. 조선 선조 때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를 두고 갑론을박 하다가 통신사를 보내서 일본의 정국을 정탐토록 했다. 당시 귀국한 정사는 일본 왕의 모습이 쥐새끼 같아 조선이나 명나라를 칠 위인이 못되니 안심해도 된다고 보고했고 부사는 일본 왕이 고양이 같이 매서운 눈과 야욕이 범상치 않아 조선을 곧 칠 것 같으니 방비를 단단히 하는 게 좋겠다고 서로 상반되는 보고서를 냈다.

임금과 대신들은 전쟁준비를 하면 백성들의 원성이 있을 테니 설마 왜가 감히 명이나 조선을 치겠느냐며 평화를 유지했다. 얼마 있다 왜구가 조선을 침략하자 열흘 만에 도성이 빼앗기고 선조는 의주로 피난가고 나라는 폐허의 쑥대밭이 됐다.

훗날 당시 정권을 잡았던 쪽의 정사에게 왜 거짓보고를 했느냐고 다그치자 그는 바른말 한 부사가 반대정파의 사람이라서 그랬으며 사실은 자기도 쳐들어올 것으로 짐작했다고 말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문화재와 나라의 존망이 흔들렸던 때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인조 때 병자호란(여진족이 남침한 전쟁) 역시 당쟁의 고집에서 서로 싸우다가 남한산성에서 항복하는 변을 당하고 말았다.

우리는 이런 아픈 경험을 알고 내려온 민족이다. 이이(율곡)의 십만양병설과 통신사의 정사가 바른 보고만 했더라도 처참한 전란은 막았을 것이다. 요즘 우리의 주변이 매우 어수선하다. 경험 많은 사람들이 국정에 참여해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운명을 잘 이끌어나가야 다시는 침략을 당하지 않는 평화로운 나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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