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세상인심이 참으로 각박하다고들 한다. 과거 부모님 대를 거슬러 올라가 조선 후기나 구한말 때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제강점기로부터 광복이 되고 교육의 기틀을 다질 때 우리 홍천지역에서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넉넉하게 사시던 분들 중 지역의 발전(교육부분)을 위해 토지를 무상으로 기증하신 훌륭한 분들이 있다.

자기 재산(돈)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이분들은 지금 가치로 치면 수십억 내지 수백억 원의 토지를 아무 조건 없이 지역 교육 발전을 위해 희사를 했다. 그렇다고 기증하신 분들의 공적비나 감사표시의 그 어떤 표적도 없다. 다만 그 좋은 일에 대하여 지인이나 선후배 몇몇 사람들에 의해 구두로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먼저 학교 부지를 기증한 김종은(84) 홍천문화원장님 선친(김수억 작고)의 행적이다. 김 원장님의 선친께서는 현재 홍천여고(구 여중 터 포함) 부지 약 3천여 평을 학교 부지로 무상 기증했다. 현시세로 가치를 평가하면 수십억 원도 넘는다. 또한 현 홍천중·고등학교 부지 역시 4천여 평을 1950년대 초에 학교터로 기증해 현 교사를 짓게 했다.

또 다른 기증자로 현재 홍천주유소 주인이고 과거 홍천시장에서 선익상회(유한회사)를 운영하시던 이태우(작고) 선친(이상원 조부)께서는 내촌면 물걸리(동창마을) 소유 임야 200만여 평을 이화여고 재단에 역시 무상 기증해 사립 중학교 설립에 큰 공헌을 했다. 현재 팔렬중학교 뒷산으로 지금은 대안 중·고등학교까지 설립돼 일개 면단위에 중·고교가 2개나 있다. 하지만 팔렬중·고등학교에서도 그 부지 기증자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처지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6.25 한국전쟁과 8.15 광복을 전후해 홍천의 소위 부자라고 했던 분들의 행적이 가관이다. 어떤 분들은 요즘 시쳇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으로 가난한 이웃을 돕고 많은 기증이나 성금·후원금은 못 내더라도 이웃과 화목했는가 하면 그 반대로 노랑이나 수전노 내지 자린고비로 살다가 간 분들도 많다.

원래 구두쇠나 짠돌이는 돼야 하지만 노랑이나 수전노, 자린고비가 돼서는 안 될 일이다. 대표적으로 구두쇠와 노랑이는 어떻게 다른가. 구두쇠와 짠돌이는 꼭 쓸데는 과감하게 큰돈도 쓰지만 노랑이 이하는 쓸데도 안 쓰고 돈(재물) 앞에 노예가 되는 자를 말한다. 독자들 주변에도 이 부류에 해당되는 지인이나 이웃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홍천지역 많은 부자들의 면면을 보면 좋은 일을 한 가문들은 대개가 그 후손들이 잘 돼서 보람을 안고 떳떳하게 사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고 재물만 챙기던 부자들은 3대를 못 넘기고 종적을 감췄다. 이런 사람은 비록 우리 고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전국적으로 그렇다.

호남의 거상 이시영(초대 부통령) 집안은 많은 재산을 처분해서 만주로 이주 독립군을 창설하고 광복운동에 전념했는가 하면 경주의 최부자 역시 3백여 년 동안 부를 이루면서 광복 직후에는 교육사업에 무상투자를 해 인재양성에 힘썼다고 한다. 그 이름과 가문의 명성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학교부지 기증자 김수억 님의 차남 김수호(77) 씨는 미국 면허 의사로서 아프리카와 북유럽 쪽에서 의료봉사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태우 님의 5남 이상준(77) 씨 역시 서울의대 졸업 후 명의로 활동 중이다. 그런가 하면 서울 부자 박흥신(당시 화신백화점 주인)은 좋은 일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있다가 몰락한 집안의 표본이라 하겠다.

하여튼 자기 재산을 기부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재산이 많아서가 아니다. 그만큼 사회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기증을 받은 기관(학교나 공공기관)에서는 기증비 등 이에 대한 영구적인 고마움의 표시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후손과 지역의 주민들도 알고 기부 행위들이 지속될 것이다. 물론 기증하신 분들을 위해 군민 모두가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고 한편 수혜를 받은 당사자 측에서는 기증 사실 자체를 알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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