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며칠 전 아침에 늘 먹던 밥 대신 식빵을 아침으로 먹은 적이 있다. 식빵 굽는 기계에 빵 두 쪽을 노랗게 굽고 계란 프라이를 하고 잼을 발라 아침을 먹었다. 영양가(칼로리)로 봐서는 한국식 아침식사에 못지않은데 먹고 난 후에는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아침을 안 먹은 듯했다.

내 몸이 빵을 식사대용으로 적용하기에는 부적정한가보다. 하기야 여행을 가서든가 집단교육을 받는 경우 아침이나 점심에 한식대신 빵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집에서 빵으로 식사한 경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 지구상의 인구 약 73여억 명이 먹는 주식용(식량) 농산물은 크게 5가지로 알려져 있다. 우선 밀과 감자 쌀 옥수수 콩이다. 밀은 미국과 캐나다 호주 유럽 등에서 주식으로 사용되고 우리나라도 많이 먹는다. 그 다음이 감자다. 감자는 특히 북유럽 쪽에서 주식으로 쓰인다.

쌀은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의 동남아에서 주식으로 쓰이는데 인구로 보아서는 세계 1위의 인구가 먹는 주식이다. 쌀 요리는 다양하다. 그 품질 또한 대단히 많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기름기가 있고 차져야 밥맛이 좋은 반면 중국과 동남아 필리핀 등의 나라에서는 메져야 쌀이 좋다고 한다.

5.16 군사정변 당시 제3공화국 때 식량증산운동의 일환으로 우리나라는 벼 품종 개량에 힘썼다. 그 결과 통일벼라고 키가 작고 수확이 보통 벼(그 당시)의 곱절이 나는 신품종을 농업기술센터(당시 농촌진흥원)에서 개발해 전국에 공급했다. 결과는 대단했다. 한가마 생산하던 양이 2가마로 배가 더 생산되니 몇 년 사이에 보릿고개가 잡혔다. 통일벼의 기적이었다.

그 후 벼에 대한 신품종이 계속 연구되자 수확은 많으나 밥맛이 떨어지는 통일벼가 없어지고 맛도 좋고 수확량도 많은 신품종들이 계속 개량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쌀 수확량은 늘고 소비는 점점 줄어 1960~70년대 1인당 쌀소비가 100kg이상에서 점차 줄어 최근에는 63kg에 불과하다. 쌀값 또한 계속 하락해서 물가상승비례로 볼 때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쌀과 우리민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6.25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을 겪고 이듬해 베트남(월남)과 필리핀에서 원조로 쌀이 들어왔다. 안남미라고 해서 밥을 하면 푸슬푸슬하고 끈기와 차진 맛이 없어 요즘 같아서는 그냥 줘도 안 먹을 품종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배고픔을 달래주는 최고의 쌀밥이었다. 하기야 우리나라와 일본만 찰진 쌀을 좋아하지 중국과 동남아에서 끈기 있는 쌀은 인기가 없다고 한다. 아마 풍토적 지리적 여건에 의한 입맛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한다.

조선시대나 구한말 일제강점기 등 우리나라는 쌀이 노동의 대가의 기준이 되는 때가 있었다. 농민이 95%였던 50~60년대는 성인 하루의 품값 최고가 쌀 한말(8kg)이었다. 요즘으로 환산하면 15000원 내외의 값에 해당한다. 그것도 힘이 센 장정의 품값이고 보통은 그 절반인 4kg 금액으로는 8000원 정도였다. 요즘 1시간의 노임이 하루 품값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쌀이 남아돈다. 지역농협의 RPC(도정공장)는 적자에 허덕이고 농민은 농민대로 생산비도 안 나온다고 아우성이며 지역농협과 정부 관계자는 보관료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휴전선 너머 북한에서는 쌀(식량)이 부족하다고 야단이라는데 뾰족한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쌀만은 자급률이 100%가 넘는다.

하지만 전체 식량자급률은 30%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사료용으로 쓰는 옥수수와 콩은 절대량이 부족하다. 부족한 양은 귀한 외화를 들여서 수입에 의존한다. 감자가루도 밀도 옥수수도 콩도 수입을 안 하는 게 없다. 우리나라도 작물전환을 해서 골고루 식량증산에 힘쓸 때가 아닌가 여겨진다.

농업(농촌)인구가 5%인 시대로 95%가 비농민이다. 5%가 생산하는 농산물로 우리가 식량을 해결하고 있다. 식량은 곧 안보라고 했다. 농촌을 등한시하지 말고 정부에서도 큰 관심을 갖고 농촌의 식량생산에 대해 최대한 관심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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