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누구나 한번쯤은 지갑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도 많이 잃어버렸다가 또 찾고는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으나 최근에 또 한 번 잃어버렸다가 찾은 적이 있다. 요즘은 지갑뿐만 아니라 스마트폰도 곧잘 잃어버렸다 찾곤 한다.

필자가 최초로 지갑을 분실한 것은 63년 전 중학교 2학년 때다. 당시 지갑에는 학생증과 비상금 초등학교 때의 사진 몇 장과 부모님 사진이 있었던 것 같다. 여간 서운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지갑을 분실하면 그때의 일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 다음은 중국여행 때였다. 대만을 거쳐 홍콩과 마카오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마카오는 환락의 도시라고 해서 빠찡코나 카지노와 같은 도박의 도시다. 그런고로 소매치기가 많았다. 필자 일행은 중국의 도시 심천에서 배로 30분쯤의 거리에 있는 마카오를 갈 때 필자도 일행에게 주의를 줬다. “마카오는 소매치기가 많으니 모두 지갑이나 가방을 조심하세요” 했다. 일행은 폭죽이 터지는 사찰에서 불꽃놀이와 부처님께 참배를 하고 기념품 점포에서 간단한 기념품을 사고 대금을 주기위해 지갑을 찾았다. 그런데 지갑이 없었다.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양복 뒷주머니에 넣었던 지갑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매우 허무했다. 그때 가이드 왈 “폭죽이 터질 때 두서너 명이 선생님 근처를 지나갔는데 그놈들의 짓 같네요” 했다. 지갑에는 약간의 현금과 카드가 있고 증명서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후 세 번째의 지갑분실은 10여 년 전 웨딩홀에서 주례를 서기위해 바쁘게 다녀왔는데 집에 와보니 지갑이 없었다. 언제 어디서 분실했는지 영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전화가 왔다. 어느 여자분께서 “강 선생님 이시지요? 제가 선생님 지갑을 주워서 갖고 있습니다. 저의 점포로 들러주세요” 한다. 반가웠다. 필자는 “예 감사합니다. 곧 가겠습니다” 하고는 음료수 한 박스를 사가지고 전화로 알려준 점포로 찾아가서 지갑을 받았다. 지갑을 주운 경위는 이러했다. 필자가 예식장에 갈 때 차를 주차하고 벗었던 상의를 입을 때 먼지를 떼기 위해 옷을 털었는데 지갑이 떨어지는 것을 점포 아주머니가 보고는 필자에게 알리려고 했으나 필자가 벌써 예식장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명함을 보고 전화를 했단다.

또 한 번은 몇 년 전 필자의 농막에서 밭을 매고 집에 온 후 지갑을 찾았으나 없었다. 내 행적을 현 시점에서 거슬러 올라가며 생각했던바 지갑이 빠질만한 곳은 농막의 언덕배기 밭둑밖에 없었다. 당일은 어두워져 하루 자고서 이튿날 일찌감치 농막으로 갔다. 지갑은 밤새 이슬을 맞은 채 떨어져 있었다.

아주 최근 즉 일주일 전쯤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지갑을 꺼내려 했으나 없었다. 분실한 것이다. 도대체 생에 들어 몇 번째 분실인가 말이다. 또 내 행적을 추적했다. 지갑을 꺼낸 것은 마트였다. 대형종합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지갑을 꺼낸 기억이 생생했다. 즉시 마트에 가서 계산대의 직원에게 계산할 때의 이야기를 하고는 혹시 지갑을 본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제가 방금 교대를 해서 모르겠고 제 앞에 계셨던 직원이 저쪽에 있으니까 물어보세요” 한다. 필자와 계산대 직원의 대화를 옆에서 듣던 다른 직원이 “손님 어떤 색 지갑인데요?” 한다. 나는 얼른 “짙은 초콜릿 색이예요” 했다. 그는 “이거 맞지요?” 하며 지갑을 내게 보여줬다. “예 맞습니다.” 정말로 감사했다. 필자는 순간 감사의 표시를 어찌해야 하나 하고 망설이다가 만 원짜리 세 장을 직원에게 주려하자 그는 한사코 사양하며 막무가내로 거절했다. 필자는 “아이스크림이나 사드세요” 하며 억지로 지폐를 놓고 도망치듯 나왔다.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다. 양심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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