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18평 임대 아파트에 산다. 방이 2개이고 좁은 주방이 1개, 베란다가 1개 딸린 집이다. 대학교 3학년인 아들, 대학교 1학년인 딸, 대학원생인 나.

우리는 책도 많고 옷도 많다. 베란다 천장에 붙은 빨래건조대에 빨래를 널어놓으면 세탁기 오가는 길이 꽉 막힌다. 때론 빨래에 눈이, 아니 얼굴이 가려 넘어질 때도 많다. 안방을 아들이 쓰고, 작은 방을 딸이 쓰고 나는 주방에 놓인 식탁에 책과 반찬을 번갈아 놓으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오늘 아침 드디어 딸이 폭발했다. 딸은 대학생이 되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넓은 집에 사는 친구들, 좋은 차를 가진 사람들, 비싼 옷을 입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아이는 "좁아터진 이 집구석, 지겹다"라고 소리소리 질렀다. 왜 자기 좁은 방에 엄마 옷 오빠 옷이 들어 와 있냐고? 치우고 싶어도 치울 의욕이 안 난단다.

딸이 학교에 가고 난 후 잠시 생각해 보니 우리가 지금부터 부자가 될 가능성은 전무해 보인다. 아들과 나는 돈 버는 재주도 없을뿐더러 돈에 대한 욕심도 거의 없다. 돈 쓰는 법도 잘 모르고 돈 쓰는 것도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돈이 없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돈 많은 사람에게 쓸데없이 굽실거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돈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가진 사람들은 돈 많은 사람에게 결코 굽실거리지 않는다. 더 소중한 가치가 물질에 있지 않으므로 어떤 두려움도 없는 까닭이다.

물론 예쁜 옷, 예쁜 신발, 멋진 집, 맛있는 음식, 훌륭한 차를 보지 못해서가 아니다.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라 포기해서도 아니다. 다만 더 소중한 것, 더 가치 있는 것, 더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는 마음의 눈이 다를 뿐이다.

초록뜰 효소카페에 앉아 있다 보면 재산이 많은 부모 밑에서 자라 돈을 잘 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편을 만나 50전후이지만 50평대 넓은 집에 사는 유한부인들을 주 고객으로 맞이하게 된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 시각도 다르고, 나라 안팎의 정세를 보는 눈도 천양지차다. 사고방식도 많이 다르고, 돈 씀씀이도 다르다.

하지만, 그들이 주 고객임에도 나는 절대 굽실거리거나 물건을 팔기위해 속이거나 아첨하지 않는다. 다만 나에게 정치적 견해를 물으면서 동의를 구할 때 내 생각이 달라도 굳이 핏대를 세워 내 생각을 말하려 하지 않을 뿐이다. 나의 양심과 자존심을 지키는 것, 그것이 나를 지키고 나아가 내 아이들을 떳떳하게 기르는 거라 생각하며 산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딸에게 말해야지. 좁지만 아늑한 우리 집 잘 가꾸자고. 당장 네가 본 것들이 세상의 중요한 가치는 아니라고.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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