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세미나의 연자를 자청하여 24일 발표가 계획되었다. 참 욕심 많은 선택이었다. 문예창작 대표가 물어왔을 때 재고의 이론도 없이 재깍 대답했다. 아 그 이후 겪게 된 환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대답을 한 이후 어떻게 글을 펼쳐나갈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약 3년 전에 가르쳤던 학생의 어머니가 찾아오셨다.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입시 문제로 상담을 오셨다. 나는 그 일 또한 적극적으로 돕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정말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러느라 세미나 작품 준비를 뒤로 미루고 있었다.

일을 정리 해준 후 그때서야 세미나 원고에 미친 듯이 매달렸다. 급기야 그 두려움과 긴장감에 심장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책 한 권을 사서 읽고 요약하고 내 생각을 펼쳐나가기엔 ‘절대시간’이 모자랐다. 그래서 책을 한 번 쭉 훑어본 후 책을 펼쳐놓고 바로 글을 정리해 나갔다.

글을 찍는데 머리가 어지러웠다. 빨리 원고를 넘겨야 했으므로 밤을 새워 글을 썼다.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다. 글을 완성해서 넘긴 후 너무나 체력이 고갈되어 사우나에 가서 마사지를 받았다. 웬 걸 몸이 슬슬 아파오더니 토요일부터 머리가 빙빙 돌았다. 누웠다 일어날 때만 어지러운 줄 알았는데 누워 있어도 머리가 빙빙 돌았다. 다른 데가 아닌 머리가 어지러우면서 느껴지는 감정은 엄청난 공포감이었다.

일요일 수원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뵈러 가는데 별안간 집에서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이 심한 복통으로 아프다고 오빠인 아들이 놀라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아들은 동생을 챙겨 집 아래 중앙대병원으로 데리고 내려갔다.

전날 토요일부터 시작된 복통이었단다. 전날은 자기 혼자 병원에 다녀온 모양이다. 갑자기 엄마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돌아오는 고속도로가 너무나도 막혔다. 결국 아이 혼자 퇴원해 집에 와 있은 후에 먹고 싶다는 크리스티 도너츠를 사와서 아이를 달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미안했다.

오늘 딸이 다니는 대학의 지도 교수님께 전화로 인사를 드리고, 오늘부터 병원에 입원시켜야겠다는 뜻을 말씀드렸다.

오늘도 여전히 카페의 영업시간이 있고, 대학원의 수업이 있어 아이를 혼자 병원에 가게 해서 중· 고등학교 다닐 때의 상황이랑 비슷했다.

엄마의 도리를 다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 내가 만든 내 삶과 나를 엄마로 둔 내 아이들의 삶의 양상에 또 회의가 들었다. 어떻게 살면 덜 부끄럽고 덜 미안할까? 왜 이렇게 어려운 인생의 과제물을 받아들고 허덕이는 것일까?

딸이 병실에서 잠들어 있을 것을 생각하니 괜히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잘 돌봐줘야지. 지금부터라도 어디가 아픈지 왜 아픈지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집중해야지. 하필이면 나를 엄마로 만났잖아. 밥도 제대로 안 주고, 빨래도 제대로 못 해주는 10점짜리도 못 되는 엄마.

아들이 돌아와서 몇 가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들에게도 역시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이 아이들은 엄마인 나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인 나보다 마음이 깊다.

가을이 깊다. 곧 첫 눈이 오겠지.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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