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지리산에 가려고 새벽 5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남원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5시 56분. 화장실에 다녀와도 되겠느냐고 검표원께 여쭌 후 서둘러 돌아왔습니다. 그 시간이 59분. 키가 크고 골격이 큰 여승 한 분이 허겁지겁 오셨습니다. 그분은 “화장실 다녀와야 겠다”는 혼잣말을 하시고 뛰어가셨습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허둥대는 모습이 여태껏 보아온 여승의 이미지와 확연히 달랐습니다.

차에 오르자 빈자리가 많아서 지정된 좌석을 버리고 앉는다는 게 하필이면 여승의 뒷좌석이었습니다. 아직 여명도 없는 어둑한 늦가을 새벽버스는 승객들이 착석하기가 무섭게 실내등을 모두 꺼 주었습니다. 막 잠이 들려고 하는 찰나 앞좌석 여승이 뭔가 둔탁한 걸 ‘딱’하고 떨어뜨렸습니다. 몸을 구부려 그걸 줍고 나자 덩달아 무릎에 얹어 놓은 뭔가가 또 떨어졌습니다. 잠이 달아난 저는 속으로 그녀를 원망했습니다. 머리를 빡빡 밀었지만 아직 파르스름한 모양이 불교에 입문한 지 오래되진 않아 보였습니다.

굳이 나이를 가늠해 본다면 서른 두 셋으로 보이는 이 여인은 자리에 앉아서도 내내 부스럭거립니다. 이내 신경을 끊고 깊은 잠에 곯아 떨어졌습니다. 정안휴게소에 도착했다는 차내 방송에 잠이 깨어 일어나보니 이 여인 또 쏜살같이 나가고 없습니다. 흘깃 그녀가 앉았던 자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과자 부스러기가 의자위에 몇 개 보이더군요. 화장실에서 다시 만난 여승은 여전히 선머슴처럼 보였습니다. 먼저 자리에 돌아와 앉았는데 연이어 먹을 것을 주섬주섬 사 오신 그분은 또 꽤 게걸스럽게 열심히 쩝쩝 드십니다. 식사가 끝나자 물을 마시려고 부스럭거리시다가 또 뭔가를 떨어뜨리셨고, 다 수습하신 후 묵직한 뭔가를 또 아까처럼 ‘딱’하고 떨어뜨립니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오고, 마음이 즐거워졌습니다. 인간에게는 직업이나 어떤 위치에 있으면 ‘그래야 한다’라는 전형이 붙습니다. 전형적인 교사, 전형적인 의사, 전형적인 목사, 전형적인 승려. 그동안 제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단 한 번의 회의도 없이 우리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전형의 예절’에 구속되어 스스로 그 감옥에 갇혀 살았나 싶었어요.

그 스님의 털털한 행동을 보니, 얼마나 야단을 자주 맞을까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안보는 척 하면서 몰래 행동의 기저를 살피는 늙은 아줌마가 있다는 것을 까마득하게 모를 그 스님을 생각하니 또 웃음이 나옵니다. 심지어 이렇게 신문에까지 자신의 털털한 행동이 실린 걸 알면 얼마나 당혹스러우실까요?

스님의 부산함에 저는 잠자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러다 이내 눈길을 돌려 오른쪽 좌석 아저씨의 커다란 하얀 비닐 봉투에 눈길이 갔습니다. 아저씨는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었고, 구두 코도 제법 번쩍거렸습니다. 하지만 아저씨가 유난히 커다란 하얀 봉투에서 꺼낸 그의 간식은 약간 민망한 느낌을 줬습니다. 시커멓게 변한 바나나 껍질을 벗겨서 남 의식하지 않고 천천히 드시는 그 모습에서 더할 나위 없이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분은 상해가는 바나나가 아까워서 들고 나와 식사대용으로 드실 뿐일 텐데, 이놈의 시적 상상력은 그를 가엾은 양복쟁이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양복 입은 사람은 뭐 스테이크만 먹어야 하나? 저는 심지어 그분이 입고 온 양복이 아주 오랜만에 산 양복일 거라고 단정까지 합니다. 시적 상상력이 하늘 끝까지 올라갑니다. 전형에 사로잡힌다는 게 정말 황당한 상상력을 만들어내죠?!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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