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이 실리는 수요일 아침이면 저는 새 사업의 오너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긴 세월을, 한번 발을 담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매달려 살았습니다. 1992년 9월 1일 첫 발을 디딘 지 어언 23년이 지나서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하고는 성질이 전혀 다른 새 일을 시작합니다. 그동안 1년 반 동안 지리산을 오르내리며 사람의 몸에 좋은 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 사업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이니까 규모가 작은 점포를 얻었습니다. 저는 지리산 산자락에서 봄에 여름에 가을에 나는 산나물들을 캐서 말렸습니다. 산나물 캐는 친구들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 산나물 종류들을 묶어서 ‘지리산을 담은 산나물 3종’ ‘5종’을 기획했습니다. 또 지리산에 나는 온갖 약성 좋은 나무들을 구해다 말렸습니다. 간에 좋은 헛개나무, 심장에 좋은 석잠풀, 야생 둥글레, 장에 좋은 우엉, 신장에 좋은 야관문 등등. 그리고 들에 나는 서리태, 울콩, 녹두 등도 구해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똑똑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려 봅니다. 우리 가게에 와서 저랑 놀아 줄 건지. 작고 온화한 테이블과 몹시도 편하다는 의자를 사놓았습니다. 오래 못 있게 하려고 일부러 불편한 의자를 갖다 논다는 잘 되는 식당주인의 마음 아닙니다. 한번 온 사람이 노트북 가져와서 영화 세 편을 내리 보고 가도 좋을 만큼 편한 의자로 준비했습니다.

지리산 인월에서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숨쉬는 항아리 인월요업의 최고 건강한 품질의 황토로 빚은 굵은 항아리를 여럿 사다 앉혀놓고 그 안에는 지리산에서 4년간 발효 숙성시킨 각종 산야초 발효액을 담았습니다. 제 효소 카페에서는 아마 풀 향기가 그윽하고 풀씨가 폴 폴 날릴 것입니다. 아름다운 이름 ‘초록 뜰 효소카페’라는 맑은 이름을 존경하는 은사님이 지어주셨습니다. 저는 이 가게의 컨셉을 오래 고민했는데, 30년대 수많은 시인들이 몰려 놀았던 명동의 어느 다방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려합니다. 가을날 낙엽이 수북이 쌓이는 밤, 노란 가로등불이 저희 카페로 찾아들 때쯤 아마추어 시인들이 밤새워 쓴 시들을 마음껏 낭송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려 합니다. 눈이 발목까지 빠지는 밤이면, 따뜻한 난로를 지펴 언 발을 녹여 주고 밤이 다 새도록 하얀 눈 빛 하나에만 의지하여 서로를 응시하며 요절한 작가의 삶을 아주 오래 애도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저와 저를 아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풍성해지고 얼마나 덜 외로워질 수 있을까요? 쫒기고 허덕이던 먼 먼 날들로부터 얼마나 멀리 달아나 이제 가쁜 숨 몰아쉬고 좀 유유자적할 수 있을까요? 실상사 절 아래서 늙으신 친어머니 모시고 콩밭 여름 내 매어 가꾼 된장콩으로 만든 된장 고추장도 잔뜩 사다 놨습니다. 풀 향기에 섞인 고소한 콩된장 냄새에 밤새 설렙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엄칩니다. 새로운 일, 새로운 생각들, 새로운 만남들, 새로운 기대들.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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