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J가 집에 왔다. 물론 딸아이의 등 뒤에 서서였다.

그 애는 내 집으로 꾸물꾸물 기어 들어왔고, 딸아이랑 욕실로 들어 가 함께 씻고, 딸아이의 1인용 작은 침대로 따라 올라가 종일 떠들었다. 그 아이를 보는 내내 마음이 어지러웠다. 3일 동안 그 아이는 낮에는 외출했다가 밤이면 딸을 따라 다시 기어들었다. 딸아이가 중3때 서투른 화장을 덕지덕지한 그 애를 딱 한번만 집에서 데리고 자겠다고 했다. 내가 그 애의 꼴을 더 이상 못 보고 내보내라고 종용하자 결국 그 애를 혼자 내쫓기 힘들었던 딸아이는 같이 집을 나가버렸다. 그 애는 광장동 근처에서 아버지랑 오빠랑 살았었는데, 두 남자의 폭행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왔다고 했다. 그 애는 자기 집에서 이틀 이상을 못 견뎠고, 집밖을 돌아다니면서 온갖 거리의 부잡스러움에 노출되었었다. 그 애의 아버지와 그 애의 큰아버지는 그 애를 찾아 거리로 나왔고, 어디서 잡히든 현장에서 각목을 휘둘러 소위 말하는 “다리 몽둥이를 분질러 놓는” 무서운 폭력을 자행하였다. 딸아이는 그 애의 공포에 깊이 연민하였고, 함께 온기 남아있는 교회의 계단에서 거친 잠을 청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학원 일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딸을 찾아 거리로 나왔고, 딸에 대한 분노보다 그 애의 처지와 상황에 격분했다. 그 격분을 견디다 못해 Y.J의 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못나빠진 부정을 강렬하게 비난하는 원색적인 문구였다. 그 결과는 훨씬 더 무서운 상황을 만들었다. 문자를 읽고 흥분하게 된 그 애의 아버지는 실로 인간이 할 수 없는,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무서운 폭력을 내 딸에게 휘둘렀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집에 들어오자마자 딸의 안전을 염려하며 서둘러 여기저기 가 있을 곳들과 짐작되는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때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무작정 나에게 아파트 아래로 내려 와 달라는 것이었다. 한 번도 집 앞에서 내려 와 달라고 한 적이 없는 아이였다. 택시 타고 온 거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하며 그냥 잠깐 내려 와서 같이 올라가자고 했다. 순간 이상한 느낌이 왔고,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혹시 10분 이내로 내가 전화하지 않으면 경찰을 보내주라 하며 집주소를 정확하게 불러 주었다. 밤 11시 반 가까운 시간, 밖으로 나오니 딸이 없다. 나직한 소리로 딸 이름을 불러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 흙이 잔뜩 묻은 더러운 승용차에서 두 남자가 튀어나오더니 후닥닥 달려서 전속력으로 나에게 달려왔다.

“니가 지원이 에미냐?” 하며 달려 온 이마위에 송충이 흉터를 한 남자. 그애의 아비였다.

평소 0.5평짜리 고시원에 살며 조카딸을 가끔 재워준다는 큰아비의 잠깐의 소개가 끝나기 무섭게 Y.J의 아비가 예의 내가 보냈던 그 문자를 내 눈밑으로 갖다 대며 “니년이, 이 따위로 문자를 보내? 저년 에미 바람나 달아난 것도 분해서 살 수 없는 쉐끼한테 니가 기름을 붓어? 앙?”

송충이 흉터는 그날 자기랑 나랑 죽자고 했다. 세상 바닥까지 간 놈이 혼자 죽기 억울한데 잘됐다며, 각목을 휘두르고 핸드폰으로 내리치는 시늉을 하며 협박했다. 송충이 흉터의 온갖 위협에 사시나무처럼 떨었지만 표면적으로는 하나도 안 떠는 것처럼 위장했다. 그때 경찰차가 왔다. 송충이 흉터는 휘두르던 각목을 얼른 땅에 짚었다. 큰아비가 애들 교육하는 중이라 했다. 아줌마 맞아요? 라고 물었을 때 얼어붙은 사시나무는 맞다 안맞다 말도 목구멍 속에서 나오지 못했고 경찰은 그 길로 사라져버렸다. 다시 찾아 온 지옥같은 공포.

그런데 왠일인지 두 아비들이 누그러져 다시 그러면 죽인다고 으른 후 갔고, 딸아이를 데리고 올라 와 몸을 살펴보니 목엔 손톱자국이 다섯 줄 교정중인 뺨을 때려, 잇몸과 속볼이 터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현장에서 그들을 놓친 우리는 그 후 약간의 지루한 법적 싸움을 했다.

한 3일을 그 기억을 지워가며 딸아이의 친구를 보는 건 참 힘들었다. 딸이 원하는 일이라 눈감아 주며 그 아이의 밥까지 퍼주며 한 상에서 밥을 먹는 초절정의 인내를 견디었다.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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