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어머니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지만, 머리가 멍하고 몽롱했습니다.

제가 보호자 간이침대 다리로 “환자용 이동식 수액걸이 발”을 꽉 누르고 자고 있더군요.

자그마치 950ml의 소변을 담고 다급해진 어머니가 한쪽 팔에 4개의 링거줄을 달고 딸을 안깨우고 혼자 어찌 해보려고 했나봅니다.

얼른 일어나 엉뚱한 소리를 해서 엄마를 웃긴 다음 화장실을 함께 다녀왔습니다. 화장실에 따라가 초록색 플라스틱 소변기에 받은 액체를 눈금달린 소변통에 부을 때, 온갖 약물냄새와 난생 처음 해보는 낯선 경험이 당혹스러워 표정관리를 해야 했습니다.

비위가 약하기로 정평이 난 당신의 딸을 엄마가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맨 처음 간호사가 이 일을 시켰을 때 당황해하는 나의 표정을 엄마가 못 읽으시게 서둘렀습니다.

나 아닌 타인의 몸에서 나온 배설물.

아무리 나의 육체를 만들어 주신 내 어머니일지라도.

하지만 그 감정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그 몸은, 내가 타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가장 가까운 타인, 내 몸을 만들어 준 바로 그 타인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이제 다섯 번의 소변을 받아드리며, 오히려 저는 기쁘고 즐겁고 눈물이 납니다.

그런데도 우리어머니는 이런 깨달음을 가지게 되기 전의 나로 생각하셨는지 당신 혼자서 화장실을 가보겠다고 그 실랑이를 하고 계셨나봅니다.

꽃송이처럼 키운 딸. 어느 자식보다 더 큰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시던 엄마.

엄마는 제가 세 살 때부터 저를 “찜했습니다.”

이 커다란 사랑을 갚을 기회가 왔는데, 망설이고 귀한 척 하는 건 자식의 도리,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뼈아픈 깨달음이 왔습니다.

어제, 둘째 언니에게도 이 깨달음의 기회가 왔는데 주춤하며 도망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나 이런거 잘 못해.“

엄마에게 들릴 듯 말 듯.

혹여 어머니가 눈치 채실까. 서운함 느끼게 되실까.

어머니를 화장실로 재촉해 모시고 갔습니다.

이런 저에게 “내 안의 나”가 어깨를 타독이는군요.

휴대용 변기를 손을 거의 안대고, 샤워기로만 씻을 때면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자식은 물론이고, 자식의 자식인 제 새끼들의 “변비 걸린 똥꼬”에 참기름 발라 손가락으로 염소똥 같이 딱딱한 변을 다 빼내 주셨던 내 어머니.

더 사랑하게 해 주소서.

내 안의 더 따뜻한 모든 감성과 도리와 박애의 정신이 싹을 피워 그 감내할 수 없이 커다란 사랑에 마구 마구 보답할 수 있게 하소서!!!!!

새벽별이 빛이 다 바랠 때까지 창문 앞에서 기도했어요.

(간절한 기도가 통하여 어머니는 지금 힘들게 회복해 가시는 중입니다.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하루라도 빨리 돌아오실 것을 믿습니다.)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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