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걸음걸음,......

삶의 앞길에서 만나는 일들은 때로는 가슴에 불을 댕기고 때로는 제 가슴을 두 주먹으로 둥둥쳐도 답답함을 털어낼 수 없이 막막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한 주 동안 아니 한 주가 훨씬 넘게 지독한 뇌폐색증에 걸린 거처럼 아무일도 할 수 없는 공허한 시간들이 흘러갔습니다.

괴로움이 저의 팔을 성난 형사처럼 뒤에서 결박한 채 좀체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글자 한 자 찍을 수 없는 얼어죽은 시체, 강시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직도 너무 먹먹해서 제가 저를 어찌해 줄 수 없는 궁박한 시간들이 지나쳐 가고 있습니다. 몹시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그대로 멈추어 있었습니다. 고통스럽고 괴로운 실체인 저라는 한 인간이 현실의 귀퉁이에서 벌건 피를 뿜는 심장을 흙바닥에 굴리며 가장 아프게 지냈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요?

많이 걱정이 됩니다. 결국 우리들은 또 거리를 두게 되겠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너무 많고 문제의 핵심은 사회 전체의 총체적인 부패에 있다는 결론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개미같은 우리들은 지쳐가게 되겠죠?! 몇 번씩 입장을 바꾸어가는 막힌 언론들에 우리들은 또 손을 들게 되겠지요?!

결국은 당사자들만이 길고 오랜 싸움을 하면서 지금까지의 일상이 완전히 뒤바뀐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되겠지요. 이런 것이 인생이겠지요. 우리가 미리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던, 꿈에도 미리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삶의 서막이겠지요.

영화, ‘또 하나의 약속’, ‘변호인’등 사회적 문제들을 짚었던 영화들의, 영화 속 FACT만을 보면, 많은 이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법정 싸움이 일상이 된 당사자들만이 길고 오래고 끈질긴 시간을 보내게 되더군요.

이기적이고 퇴폐적인 ‘세월호’로 세상에 그 흉측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한 이 싸움만큼은 아주 오래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가지고 추이를 지켜보고 결코 그들의 손을 놓지 않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래봅니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희생자가 아니고 우리 모두가 세월호 표를 끊고 대기하는 예비 희생자이기 때문입니다. 시민의 사회적 참여가 절실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이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썪어버린 관료들의 행태를 면면히 들여다 보면 침도 아까워서 뱉을 수 없습니다. 중앙 관료나 지방 관료나 약간의 직책이라도 가졌다 싶으면, 그 어줍잖은 의자의 횡포란 치를 떨 지경입니다.

그들은 밥셔틀 우산셔틀 구급차 개인용도 등의 패악을 떨고도 잘못을 모르는 후안무치입니다.

그런 그들은 가시적으로 잠시 좌천되었다가도 잠잠해지면 다시 슬그머니 어느 자리에 슬쩍 기어 오를것입니다. 늘 그래왔듯이,...... 그런 그들에게 이 세월호 사건을 해결 해 달라고 생선가게 열쇠를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럴 듯한 규제들, 얼핏 이해가 되는 규제들, 더 깊이 들어가고 보면 모두가 거대한 쥐덫일 뿐인 규제들. 그 규제의 위엄을 등에 엎고 위풍당당 거리에 나선 관료의 끄나풀들.

생선을 물고 놓아 주지 않는 고양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활보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 새벽 거친 꿈 속에서 분명히 보았습니다. 번쩍이는 금뱃지를 가슴에 단 고양이들이 쥐덫에 걸려 발버둥치는 모습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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