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 아이를 둔 엄마이다 보니 아침저녁으로 TV 앞에 앉아 세월 호 침몰 관련 방송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자식을 잃은 어미들의 애간장은 천 갈래 만 갈래 찢기어 숟갈도 못 들고 밥을 물린다는 소식을 듣는다. 희생자가 너무 많아 실종자 가족이 진도 체육관에 머무르며 잠도 이루지 않고 밥도 먹지 못하고 다만 애타게 가족들 생환을 7일째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헝클어지고 퀭한 그이들의 눈동자를 보며 멈추지 않고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야 했다. 세월호에서 무사귀환한 사람들 또한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고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을지 너무나 염려가 된다. 시간이 지난들 그 참혹한 고통의 시간과 상황을 잊을 수 있을까? 창밖에 눈길을 주니 햇살이 머무는 초록나무들이 너무나 싱그럽다. 서울 하늘 아래 이곳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뭇잎이 바람에 일렁이고 낮이 가고 밤이 가고 또 새로운 아침이 온다. 지독하게 무심하다.

대학에 다니는 아들을 먹이려고 쟁반에 밥과 반찬 몇 가지와 물을 챙겨 책상위에 올려다 주었다. 아이는 지금 자기 공부방 책상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아들의 수저 달그락 거리는 음향만으로도 이 어미의 가슴이 이렇게 뿌듯해져 오는데,......이 기쁨마저 미안하기 그지없다.

오늘은 나의 마흔 일곱 번 째 생일이다. 이제 쉰 나이를 바라보며 철이 없어 허둥지둥 살아온 날들이 스쳐 간다. 생각해 보면 46년을 살아오는 동안 별별 일을 다 지켜보고 겪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어느 장소에서 어떤 끔직한 상황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럴 때 또다시 마음의 끈을 동여매지 않으면 무너져 내릴 것같은 허망함을 견디기 힘들 것 같다.

나는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아니지만 위기의 순간에 냉정해지는 편에 속한다. 이런 나에게 두 번의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었고 냉정을 잃지 않아, 그 고통의 순간에서 벗어난 기억이 있다.

2012년 8월 어느 날, 강동구 상일동에 새로 지은 아파트에 살 때의 일이다. 출근을 서두르던 나는 속옷가지를, 흰 빨래 돌아가는 세탁실로 뛰어 들어가 세탁기에 막 집어넣고, 돌아서서 문손잡이를 돌렸을 때의 일이다. 두꺼운 철제문이었는데 손잡이가 별안간 돌아가지 않았다. 몇 주 째 내린 비로 세탁실 철제문과 철제 손잡이가 녹이 슬었던 것일까? 세탁실은 베란다를 거쳐 들어 가 다시 철문을 달아 놓은 구조였는데, 세탁기 하나 사람 두 명 들어 갈 정도의 아주 좁은 공간이었다. 베란다는 안방창과 연결되어 있지만 세탁실은 가로세로 50센티 70센티 정도의 높다란 미는 창문 하나밖에 없는 완전 밀폐된 곳이었다. 순간 얼굴로 더운 기운이 확 솟구쳤다. 그리고 나지막히 혼자 중얼거렸다.

‘나, 갇혔구나!’

두려움과 공포가 몰려 왔다. 완전 밀폐된 상자 속 같은 세탁실은 작은 창문을 통한 온실효과로 터져 버릴 거 같았다. 습기로 인해 세탁실은 까만 곰팡이가 벽과 천장을 완전히 뒤덮고 있다. 숨이 막히며 재채기와 기침이 터져 나왔다. 위아래 속옷 한 장씩만 입고 있던 나는 난감함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집 안의 상황에 대해 헤아려 보니 다행히 다리미도 뺏고, 가스 렌지 위 커피포트도 꺼 놓은 상태라는 것으로 일단 안도했다. 3시반까지 잡아 놓은 스케쥴 때문인지 아주 먼 먼 곳에서 핸드폰 벨 소리가 안방 벽을 타고 들려왔다.

창문높이는 아마 2m 높이에 있었던 거 같다. 세탁실이 좁아서 큰 대야 등은 베란다에 있고 양철 물통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걸 거꾸로 엎어놓고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어 소리를 질러 보려고 했으나 물통이 매번 미끄러져 무픞과 얼굴을 다쳤다. 세제 묻어 있는 빨래들을 끄집어내어 물통 밑에 깔아놓고 다시 시도했다.

지나가는 이들이

‘핸드폰으로 구조 요청하세요.’

하고 바쁜 듯 지나가고, 내 또래 아주머니는 올라오려다 마음을 바꾸었다. 어떤 오해를 하는 거 같았다. 40분을 동동 구르는데, 그때, 하교 길 꼬맹이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에게 6층 높이의 창문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비밀번호 다섯 자리를 알려 주었다. 다섯 명의 아이들이 숫자 다섯 개를 외워서 올라왔다. 아이들이 현관문을 따고도 선뜻 안쪽 깊숙이 박혀 버린 나를 찾아 내지 못했다. 철문을 마구 두드리니 아이들이 왔다. 문을 열고 나온 감격의 순간, 모두가 놀랄 차림, 런닝 한 장, 팬티 한 장의 땀범벅 곰팡이범벅의 초로의 아줌마 등장!! 아이들에게 현관 밖으로 나가 있으라 하고, 얼굴과 팔에 묻은 곰팡이만 먼저 씻어 낸 다음, 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순수하고 고마운 아이들, 아이스크림 값을 쥐어주고 돌려보낸 뒤, 그때서야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미루어진 약속들을 수습했다.

또 한번의 위기상황도 비숫한 경우인데 언니와 둘이 개조한 봉고차에 갇혔을 때의 일이다. 운전석과 철 판넬로 차단시켜 놓고 모든 창문을 열리지 않게 개조한 차였다. 그때도 8월이었는데 안에서 고장나버린 봉고차 손잡이가 헛바퀴만 돌고 열리지가 않았다. 차 안의 온도는 70도가 넘었다. 언니가 쓰러져서 입에 거품을 물고 있어서 몹시 급박했다. 나는 쏟아지는 땀을 훔치며 안경을 몇 번을 고쳐 써가며 저 멀리 큰 길 맞은편에 세워둔 치 킨집 오토바이의 배달번호를 보게 되었다.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10분 후 우리는 구출되었다.

나는 겁이 무척 많은 편이지만 지금도 무서운 생각이 드는 상황을 만나면 낮은 소리로 속삭인다. 모든 건 지나갈거야. 너는 이 상황을 지나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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