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글쓰기가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기술형태라는 사실을 쉽사리 잊는다. 인간은 문자없이 수천 년간 지구상에 존재해 왔고 다시 수천 년 이상 세월이 흐른 뒤에 비로소 알파벳 문자를 만들었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연구로 유명한 고(故) 월터 옹(Walter Ong)은 그의 저서 '말과 글(Orality and Literacy)'에서 대문호 호머가 구전들을 모아 신매체인 글로 표현해 인류 최대 명저인 일리어드를 지었다고 설명했다. 일리어드는 당대에 유행하던 상투적인 관용구들을 조합한 구술문화의 산물이다.
  기원전 5세기경 아테네에서는 쓰기와 읽기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지만 플라톤 같은 철학자들에게는 생소하고 회의적이었다. 플라톤의 대화편 중 패드로스(Phaedrus)에 보면 스승 소크라테스는 구술 논쟁의 우월성을 주장한다.
  더욱이 플라톤은 '쓰기는 기억의 쇠락을 초래할 지도 모르는 단순한 목발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며 논쟁을 방어할 수 없는 수동적인 매체라고 했다.
  과거에 문자언어가 그랬던 것처럼 컴퓨터의 등장은 표현기술의 커다란 변화다. 하지만 진정으로 대변혁의 시대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컴퓨터도 오래전에 발명된 쓰기를 전자적으로 확장시켰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새로운 표현도구는 아니다.
  혁신적인 의사전달 방식은 시각매체를 통한 것이다. 실례로 쌍방향성을 지닌 비디오게임을 들 수 있다.
  쓰기, 프린트, 전자책, 문자메시지 등은 문자언어에 기초한 일종의 연속체이지만 비디오게임과 같은 시각미디어들은 우리 뇌의 전혀 다른 부분을 자극한다.
  카네기멜론대의 신경과학자 저스트(Marcel Just)는 '시각미디어는 문자미디어에 비해 좀 더 자연스런 표현 방식이라고 강조한다.
  읽기는 배우는 데 수년이 걸리는 난해한 기술이지만 비디오게임은 시각에 빨리 적응되는 뇌의 작용으로 특별한 노력없이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자는 인간이 만든 문화적 인공물로 인간의 본성에서 유래하지 않았다.
  문자언어 옹호론자들은 당장 홈피나 블로그가 문자사용을 권장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위안에 불과하다.
  시사 주간 뉴스위크(9월 26일자)도 초고속 통신망과 대형컴퓨터 위력에 힘입어 문자는 점차 쇠락하고 시각매체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실시간으로 시각적 메시지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문자언어를 고집할 리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십 년이 흐른 뒤 미디어 시장에서는 인간이 가공해 낸 문자언어가 퇴보하고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시각미디어가 지배하게 될 것이다.
<김덕만·국가청렴위 공보관·言論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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