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많이 내렸다. 유난히 자주 많이 내렸다. 갑자기 내린 폭설이라 며칠 동안 꼼짝없이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신문을 뒤적거리다보니 올해의 사자성어가 눈에 들어왔다. 
  康衢煙月(강구연월)-`번화한 거리에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을 나타낸 말로, 태평성대의 풍요로운 풍경을 묘사할 때 쓰인다. 이 말은 중국 요 임금 시대에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노래한 동요 `강구요'(康衢謠)에서 유래한다.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열자(列子)의 ‘중니’편에 보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 된 요 임금이 민심을 살펴보려고 미복 차림으로 번화한 거리에 나갔는데, 아이들이 "우리 백성을 살게 해 주심은 임금의 지극한 덕"이라고 노래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  旁岐曲逕'(방기곡경)-`바른 길을 좇아 정당하게 일을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 억지로 한다'는 뜻의 사자성어도 눈에 띈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지방의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2010년의 한해가 정말 국민의 뜻을 받드는 지도자가 나와 강구연월의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열한시가 좀 넘어 길을 나섰다. 소나기눈이다. 금세 세상을 하얗게 변할 수 있는 계절이 겨울 아니겠는가.
  ‘소니고개’마루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환상적이다.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덮인 저수지의 풍경과 ‘응곡산’에서 이어지는 능선에 우뚝 서있는 푸른 소나무가 겨울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듯하다.
  눈꽃이 핀 나뭇가지마다 햇살이 매달려 반짝인다. 금세 피었다가 지는 반나절의 꽃이지만 꽃이 지닌 생명력을 오래도록 각인 시킨다. 
  ‘속초리(束草里)’는 ‘영귀미면(詠歸美面,동면)’의 면소재지로 속새가 많으므로 ‘속새울’, ‘속새골’이라 하였는데, ‘덕고개’, ‘등대’, ‘원개울’, ‘꽃골’, ‘느릅나무정이’, ‘사락골’, ‘한갑실’, ‘소니골’, ‘불근봉’, ‘먹방’, ‘고니골’ 을 병합하여 ‘속초리’라 하였다. 
  ‘속초리’와 ‘노천리’의 경계는 ‘소니고개’다. 원래는 ‘노현(弩峴)’이지만  ‘소니고개’가 된 데는 큰 짐승이 자주 내려와 사람들이 소니를 놓은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소니고개’부터 이어지는 골짜기에 444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그 길가에 속초저수지를 들여앉힌다. 꽁꽁 언 저수지 수면은 가득 눈을 실어놓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
  ‘속초저수지’는 ‘소니골’을 막아 물을 가두었는데 ‘소니골’ 안으로 들어서면 ‘애막골’, ‘통골’, ‘웃통골’, ‘순남이골’이 ‘응곡산’을 넘어 ‘약바터’로 이어지고, 그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가두었다. 이 물줄기가 속초의 젖줄이다. 얼음이 녹고 해빙과 함께 시작되는 봄의 향연에 물고를 열 것이다.
  속초저수지를 지나 내려오다가 오른쪽으로  들어서는 골짜기는 ‘서낭당골’인데 저수지를 막기 전 예전에 이곳을 지나 ‘노천’으로 넘어 다녔다. 좀 더 내려오면 ‘먹방골’의 물줄기와 만난다.  이곳이 바로 ‘소니골’ 어귀가 된다.
  지금은 ‘소니골’이 조그만 골짜기로 남아있지만 저수지를 포함하는 큰 골짜기였다.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소니골’개울을 건너 ‘먹방골’로 들어섰다.
속초의 큰 골자기는 ‘소니골’과 ‘묵방산’에서 이어지는 ‘먹방골’이다. ‘먹방골’에서 이어지는 임도는 ‘묵방산’과 ‘응곡산’을 굽이굽이 돌아 좌운 ‘희수대’로 이어진다.
  ‘먹방’은 ‘묵방산’ 아래의 마을이고, ‘묵방산’의 큰 골짜기이다. ‘먹방골’은 휴식년제에 들어 출입이 불가능하다.
  ‘묵방산’은 그리 높은 산이 아니다. ‘응곡산’과 후동리 ‘만대산’과 함께 삼각형을 이루는 산이다.  골이 깊고 숲이 우거져 낮에도 컴컴하다 하여 먹묵(墨)자를 붙여 ‘묵방산’이라 하였는데 마을사람들은 ‘먹방’이라 부른다.
  ‘먹방’은 아직도 심마니들이 목욕재개하고 산신제를 지내는 산이다. 산신령이 점지하여 천종산삼을 만난다고 할 만큼  영험한 산이라 한다.
  골안으로 들어가면 마을사람들이 석이버섯을 땄다는 ‘석이바위골’을 지나 ‘지당뒷골’이다. ‘고로쇠나무골’과 ‘복상나무골’을 지나면 ‘뱀골’이고, ‘지폐골’, ‘직메레골’을 지나면 ‘더렁골’이다.
  골의 골짜기가 좁아지면서 얼음 속 바위를 흐르는 물소리가 맑다. ‘쥐방골’을 지나 ‘만장의터골’을 지나면 ‘먹방골’의 막창인 ‘쇠막골’, ‘명당골’이다. ‘쇠막골’로 들어서면 ‘묵방산’으로 오를 수 있고, ‘월골’을 따라 능선을 넘으면 ‘좌운’이다.
  지금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임도가 있어 산천경계 둘러보며 쉬엄쉬엄 ‘좌운’까지 갈 수 있다.   
  ‘먹방골’의 물줄기는 ‘쇠막골’에서 시작된다. 이 물줄기를 따라 흐르는 물길이 ‘소니골’의 물과 합쳐 ‘먹방천’을 이룬다.
  먹방 내치기는 ‘불근봉’이다. 갈나무가 많아 가을이면 불이 난 듯 온산이 붉다하여 ‘적봉(赤峯)’이라 하였다. 신봉 능선으로 이어지는 ‘다락골’ 어귀에서 산모퉁이를 돌면 ‘솔경지’다. 지금은 소나무가 보이지 않지만 ‘다박솔’을 이루고 있었고,  ‘이좌수미골’을 지나면 신봉으로 넘는 ‘하우고개’ 어귀가 나온다.  
또한 ‘산수골’과 경계를 이루는 능선은 완만한 둔덕을 이루며 ‘큰민영골’, ‘작은민영골’, ‘자작골’이 골짜기를 이룬다.
  신봉으로 이어지는 ‘하우고개’어귀를 돌아내려오면 ‘동돌봉’이 있다. 말 그대로 바위 봉우리인데 서낭당이 있었다. 서낭당을 지나면 ‘새술막’이다. 지금은 농협 농산물 집하장이 들어서 있다.
  ‘새술막’은 일제 강점기에 술집이 들어서면서 붙여진 이름인데 기생집도 주막도 기억날듯하지만 그런 기억보다는 ‘고아원(보육원)’이 있었던 자리로 기억된다.
  홍천 명동보육원의 전신이기도 한 이곳은 우리시대의 자화상 같은 곳으로 힘든 삶을 이겨내고 노동자 시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고철(김금철)시인의 기억에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툰 쟁기질에도 더는 질주하지 못한 공장 하늘에
고무다라만한 달이 뜬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빈 윤활유 깡통에
申형은 벌써 예리한 야스리로 구멍을 내고 있었다
 
창틀에 채인 바람
누군가 깁고 계실지도 모르는 허울진 옛이야기를
사철내내 따라다니던 종기자국처럼
어머니 보고 계실
겨울달력 같은
머문 달빛에 불을 지폈다
가생이 불꽃이 수평을 이루면
깡통을 닮은 세상은 온통 달빛이 되었다
국물 같은 부적이 내 나이를 낳았 듯
이름을 낳고 호적을 낳고 아버지를 낳고 낳고 낳고
무디고도 아린 큰 길이 보였다
친구가 보이고 학교가 보이고 내 누이가 보였다
누군가의 산소도 보였다
 
일 년 열 두달만한 불효를 태운다
몸피 곳 곳 들쑤셔 도는 나의 체온도 태웠다
달맞이 훨 훨 타는 밤 병들지 말자고
이빨 물어 내뱉은 고시레 몇 점
 
세상에서 가장 환한 달밤이었다
                                  
       고철 시인의 시집 <핏줄> 중에서 - 정월대보름 - 
  그는  ‘자신의 시집(詩集)은 부모를 찾는 전단지’라고 말하고 있다. 시집 <핏줄> 표지에는 고아원에 입소할 때 찍은 얼굴 사진과 고아원에서 발급한 원아증명서가 희미하게 인쇄되어 있다.
  그는 시보다 핏줄에 더 집착한다. 그래서 ‘나는/죽어도,/핏/줄/을/놓지 않았다’(‘줄타기’전문)라며 짧고 애절한 시로 자신의 내면에 감추고 있는 비극적 삶을 이를 악물고 견뎌내고 있다. 
  그는 밧줄에 몸을 맡긴 채 고층건물 외벽에 칠을 하는 페인트공이다. 먹고 살기 위해 목숨을 한줄기 밧줄에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밧줄보다 놓칠 수 없는 것은 죽어도 놓을 수 없는 질긴 핏줄이다. 그 핏줄을 찾기 위해 96년 거리시낭송협회를 만들고 자비를 들여 매달 거리에서 시낭송을 했다.  
  괜히 마음 한구석에 바람이 든듯하다.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서로 함께 살아가는 생명이라고 더 보듬어야 할 일이다.
  ‘새술막’에서 개울을 건너 ‘곳골’로 들어간다.
  원래는 ‘꽃골’이다.  한자로는 화동(花洞), 화방(花方)이라고 하는데, 봄철 온산에 두견화가 붉게 핀다고 한다. ‘두견화’는 ‘진달래’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먹을 수 있어 참꽃이라고도 하며 입이 시커멓도록 따 먹기도 했는데 술을 빚으면 두견화주요, 전을 부치면 화전이라 하여 우리 민족에게는 친숙한 꽃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며 분홍색·진분홍색·흰색·자주분홍색 등 색깔이 다양하고 한방에서는 영산홍이라 하여 요통 진통 해열 해수 기관지염 두통감기 류머티즘 치료에 쓴다.
  ‘꽃골’은 골이 넓다. 넓은 만큼 산은 나직나직하고 봉우리가 둘러선 산세가 진달래꽃을 닮은 듯하다.
  안으로 들어서면 ‘큰고개’ 어귀에는 서당이 있었고,  한민우 어른께서 훈장을 하셨다.
  ‘큰고개’를 넘으면 ‘사라골’이다. 그러나 마을에서는 ‘고도리골’로 ‘사라골’을 넘어다녔다. ‘사라골’은 원래 ‘사락동(四樂洞)’이다.
  안막으로 오르면 ‘배나무등’, ‘시대무골’, ‘느릅나무골’을 지나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높은터’로 이어지는데 능선을 넘으면 ‘후동 웅시렝이’가 나오고, 원골로 오르면 ‘닥밭골’- ‘서덜골’- ‘너럭골’을 지나 ‘배나무골’로 이어져 ’묵방산‘으로 오르게 된다.
  마을 안까지 길이 포장되어 있어 눈을 치웠지만 아직 바닥이 얼어붙어 미끄럽다.
  더 이상 눈이 깊어 갈 수 없다. 미련 두지 말고 다시 돌아서는 것이 나그네의 발길이지만 청국장냄새가 자꾸만 머뭇거리게 한다.
  ‘꽃골’에서 내려와 ‘속새울’로 들어섰다. 마을 어귀에 서낭당이 서 있다.‘속초’라는 지명이 생기게 된 ‘속새울’은 골안으로 들어설수록 넓어진다.
  ‘속새’는 산속 계곡의 물가에서 많이 볼 수 있고 습지에서 자란다.
  줄기 속이 비고, 줄기에 마디와 홈이 있다.
  한약재로는 ‘목적(木賊)’이라 하여 이뇨작용이 현저하여 신장성 질환에 많이 쓰이며,  간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속새’를 뜯어 이를 닦아 하얀 치아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는 규산염이 들어있기 때문이며 최근에는 말렸다가 돼지 족발을 고아먹기도 한다.
  암튼 속새가 많았다는 것은 산골짜기라는 이야기다.  
  지금은 온 둘레의 밭이 전부 인삼밭이고, 골짜기도 ‘고개너메’, ‘안골’, ‘진골 ’정도이고, ‘차돌배기’라는 작은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안막에서 내려다보는 산의 형상이 참으로 푸근해 보인다.
저산이 ‘와우산(臥牛山)이구나. 눈이 쌓여 더 살쪄 보인다.
  눈의 세상-모두가 고원(古園)이다. 맹자의 인생삼락(人生三樂)에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現)을 하나 더 보태 겨울 고원에 들고 싶다.
 글·사진 허 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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