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목포로 지역탐방 연수를 갔다. 목포역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어서 갔는데 유달산이 보이는 구시가지의 새로 단장한 깔끔하고 편안한 게스트 하우스가 인상적이었다. 위층에서 자고 아침엔 멋진 타일 장식의 아름다운 1층 주방에 다 같이 모여서 밥을 먹는다. 따로따로 온 사람들도 아침엔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지역 재생과 개발 기금을 통으로 한곳에 몰아서 쓸까, 나누어서 쓸까 고민하다가 관광객이 오고 싶어도 마땅한 숙소가 없다는 문제의식 속에 게스트 하우스 1곳당 약 4~5,000만 원 지원 매칭을 하
60명 남짓의 작은 학교인 오안초등학교 아이들은 매일매일 시를 쓴다. 몇 년간 독서교육에 열심이신 선생님과 함께 학교에 방문하는 작가님들을 만나고 강의를 들었다. 강의를 듣기 전에 작가님의 책을 여러 권 읽고 질문지 작성을 하는 등 사전 준비는 기본이다. 국내의 유명작가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는 아이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어떻게 자라게 될까?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쓴 시는 한솔 출판사에서 라는 제목으로 출판이 되었고 곧 2쇄 인쇄를 앞두고 있다. 시인이 된 아이들은 한솔 출판사 유튜브 TV에 출연해 북
아이들이 초등학교 2, 4학년 때 이사를 와서 전교생 60명 정도가 다니는 작은 학교에 전학을 했다. 홍천은 읍내에 있는 몇 개 학교를 빼고는 거의 학생 수가 100명 이하인 작은 학교다. 아이들이 사는 지역의 반경이 넓어 초중고 아이들을 위한 스쿨버스가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촘촘히 다닌다. 아이들은 처음 타보는 노란색 스쿨버스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스쿨버스에는 감동스럽게도 라고 쓰여 있었다. 다행스럽게 그 스쿨버스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다는 소리를 거의 안 하고 다녔다. 아이들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의 광장을 ‘아고라(Agora)’라고 불렀다. 본래 ‘사다’는 의미인 ‘아고라조(Agorazo)’에서 비롯된 말로 시장의 의미로 쓰였으나 아고라는 시장의 기능 이외에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시민들의 일상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사람이 모이는 곳’ 또는 ‘사람들의 모임’을 뜻하게 되었다. 유럽으로 여행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광장’을 만날 기회가 많은데 도시 중심의 빈터는 시장도 되었다가 공연장도 되었다가 행사장이 되기도 하고 운동장도 되어 많은 사람들의 소통의 욕구를 채워준다. 광장은 집
아서왕 신화와 파르치팔 전설로 어부왕(Fisher king) 이야기가 있다. 어부왕은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쓴 술잔, 성배를 수호하는 가문의 왕이다. 어부왕은 창상을 입고 오랜 세월 고통으로 보낸다. 어부왕이 고통에서 나을 방법은 오직 하나, 선한 기사가 찾아와서 ‘질문’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왕은 다시 걸을 수 있고 백성들은 기쁨과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기사 파르치팔이 나타났다. 파르치팔이 성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시종들은 목욕을 시키고 값비싼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 그가 연회장에
3년 정도 홍천의 여성들과 인문학 책모임을 하고 있다. 홍천에 오기 전에도 생태 독서 모임, 동화 읽는 엄마 모임, 엄마들이 하는 역사책 모임 등 크고 작은 책 모임을 꾸준히 해온 터라 홍천에서도 삼삼오오 모여서 책 읽는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책도 책이지만 모임별로 만나는 사람들도 늘 흥미롭다. 다양한 역사와 삶의 방식, 철학을 가진 ‘사람책’들을 만나는 기분이랄까. 때로는 만나서 나누는 대화만으로도 배우는 것이 많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필수인 홍천 엄마사랑 카페에 용기 내서 글을 하나 써봤다.
미국에 사는 아는 언니가 새로운 마을로 이사를 갔을 때 이웃들이 작은 선물과 함께 마을에서 알아 두면 요긴하게 쓰일 정보(우체국은 어디에 있는지, 좋은 산책로 소개, 마을의 행사등)들을 쪽지에 써서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에게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이웃을 맞이하는 환대의 모습이다. 환대(歡待)의 사전적 의미는 반갑게 맞아 후하게 대접함이라는 뜻으로 한자에 입을 벌리고 기뻐하는 모양을 함축하고 있다..낯선 곳에 도착한 위축된 사람들이 타인의 환대를 받으면 마음이 한결 부드러지고 편안해진다. 마이클 앤드류 포드는 “환대란 손
홍천 청년들의 네트워크 홍청망청(홍천청년희망청춘)에서 청년들과 소셜다이닝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소셜 다이닝은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서 만나 식사나 브런치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관계를 확장시키는 모임의 형태이다. 늘 만났던 사람들을 뛰어넘어 나랑 관심사가 같고 비슷한 것을 찾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나를 넓혀가는 설레는 일이다. 최근 이러한 소셜 모임은 디지털 기반 공유경제로 발전하여 사람과 사람들의 만남과 모임을 연결하는 거대한 사업이 되어가고 있다. 일례로 인터넷에서
홍천에 와서 첫 2년간은 농사도 약간 지으면서 프리랜서로 일을 했다. 이사 오기 전에 주로 시민·비영리 단체 홍보물 제작을 했는데 홍천에 와서도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계속 소개가 되어 생각지도 못했던 디자인과 홍보 용역이 계속 늘어만 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일하면서 알게 되었다. ‘디지털 노마드’. 노트북만 있으면 전국 어디라도, 혹은 해외에 가서도 일할 수 있는 일을 내가 하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우리나라는 전국 어디라도 인터넷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업무사항은 주로 메일을 주고받거나 메신저를
며칠 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9살 초등학생이 하굣길에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아이가 숨진 초등학교 후문과 정문 사이 도로에는 인도가 없어서 학부모와 주민들은 예견된 참사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차가 보행자 옆을 스쳐 지나갈 정도의 좁은 찻길을 아이들은 걸어서 다닐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보행은 시민들의 가장 기본적 권리이다. 자동차에게 차도뿐 아니라 인도까지 내주고 상가에서 내놓은 물품들로 가로막혀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홍천시내의 걷기 환경을
“마음 편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워커빌리티(Walkability)’가 그 도시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 (Jeff Speck. 2015) 홍천 시내를 익히느라 골목골목을 걸어 다녀 보았다.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는 오래된 한옥, 도시 한복판에 있는 밭, 차가 못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 이 지역만의 소소한 가게들도 정겹게 느껴진다. 거리에서 보이는 홍천만의 특색도 찾고 빨래방, 스포츠 용품점, 안경점, 분식집, 은행 등 생활에 필요한 곳들을 알아 나가는 과정도 재미있다. ‘걷는 일’은 내가 사는 공간을 온 감각으로 알
홍천은 지역에서 키운 인재들이 지속적으로 유출되는 구조이다. 아이를 고등학교까지 키워서 수도권과 근교 도시의 대학으로 내보내기 바쁘다. 인구정책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면서 정작 자식은 내보내고 귀농 귀촌인을 환영하는 현상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성남에서 만난 한 친구는 도시에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지만 차마 고향으로 가기가 두렵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무섭지만 무엇보다 자기 부모가 가장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마치 그 자랑스러웠던 자식이 패배자가 되어 돌아온 기분이랄까. 농촌은 도시에 계속 사람을 내주
경기도 성남에서 35년간 살다가 홍천으로 이사 온 지 4년이 되었다. 성남은 1970년대에 서울 청계천 주변의 무허가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킨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다. 이후 분당, 판교 개발까지 우리나라 계획도시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성남의 원도심은 트럭에 실려 온 12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산언저리 나무만 겨우 베어 놓고 도로와 상하수도 시설이 전혀 없는 황무지에 일군 도시로 한때 빈민과 저소득층 도시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이곳에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이 도시를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