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 ‘양평도서문화센터’ 건립 박차양평군은 총 260억 원의 예산을 투입 2023년 준공 예정인 양평도서문화센터를 건립 중에 있다. 양평도서문화센터는 기존 도서관과 다르게 도서와 문화를 융합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군민들의 다양한 문화욕구를 충족시켜 나갈 계획이다. 양평도서문화센터는 2019년 한강유역청 특별지원사업 공모에 선정 한강수계관리기금 57억 원의 예산 지원이 확정된 상태다. 양평군에서는 수계기금 추가 지원과 특별조정교부금, 균형발전특별회계도 지원받을 계획으로 현재 민선7기 네트워킹을 통한 예산확보를 위해
가평군과 춘천이 주 생활권으로 다양한 교류 통해 마을 발전 앞당겨홍천군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모곡2리 마을은 행정구역상 홍천군 서면에 속해 있지만 홍천읍에서부터 거리가 무려 100여리나 멀리 떨어져 있어 모곡리 사람들의 생활문화권은 일찌감치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함께하며 오늘을 살고 있다. 모곡리 사람들이 장을 보기위해 홍천읍을 오려면 무려 1시간 이상이
‘북노일’과 ‘남노일’이 만나 이루는 물길의 문양은 ‘수태극(水太極)’이다.‘생곡 모두부치’에서 흘러온 물이 모이고 모여 비로소 큰 강을 이루더니 ‘금학산'을 끼고 도는 ‘남노일 고드래미’와 ‘위안터’를 감싸 안으며 수태극을 이룬 것이다.태극은 ‘궁극의 근원’을 뜻한다.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에 있던 우주만물의 근원이며 본체이다. 태극은 원상 속에 양과 음이 위 아래로 상대하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사멸이 있을 수 없는 영원의 상을 상징한다. 「역경」에 ‘역에 태극이 있어 이것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으며,
물은 흘러간다. 흘러가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바다가 되어 둥그런 수평선이 된다.미약골 모두부치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벌력의 강이었고 남천이었고 화양강이었다. 이 강에서 아버지가 살았고 어머니가 살았고 그 아들딸이 살았고 또 그 아들과 딸들이 살아 산이 되고 물이 되어 또 살았다. 물이 알고 있는 낮은 곳이란 곳 물은 낮은 곳을 애써 찾지 않으며 높은 곳을
'삼마치 웃너븐터(웃높은터)'에서 내려오면 '논골'이다. 푯대봉을 사이에 두고 '솔골재(귀영고개)'물과 합쳐 개울을 이룬다. 개울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찾아 흘러간다. 대개 개울 따라 길이 나기 마련인데 '높은터'는 비탈을 끼고 길이 났다.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는 길. 이 길을 걸어다녔을 그 시절은 하루해가 얼마나 짧았을까? 그때 그 시절
홍천강 탐사기행을 나선지 어느덧 2년이 되어간다. 마을마다 골짜기마다 쉴 날 없이 찾아다녔다. 어느 날은 모 심는 논두렁에서 마을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어느 날은 여물 끓이는 부엌에서 언 발을 녹이며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서석 내촌 두촌 등 화양강의 상류지역을 둘러보며 마을의 유래와 지명과 이야기로 전해오는 설화 등을 채집하고 쓰면서 힘든 만큼 즐거움도
'사미정(새미정)'을 돌아 내려오면 '큰골내치기'다. '새미정'에서 낚시를 하던 여름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물결이 일렁이던 수면은 얼음으로 덥히고 아이들이 모여 얼음축구를 한다. 마을사람들은 얼음떡메치기로 고기를 잡기도 한다. '새미정'은 '사미정'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은 '궝소’와 '새미정소(沼)'를 합쳐 부르는 지명이
1900년대에는 진리 나루새를 중심으로 오일장마당이 형성되었다. 그 시장터는 현 홍천문화원에서 홍천관광호텔로 이어지는 길 양편과 홍천주유소에서 학다리기름집 앞길이다. 그 중심은 구인당한약방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진리 나루터는 마지기고개(마현, 마치)와 석왕사가 자리하고 있는 분토골, 절골에서 흐르는 개울이 동백아파트 옆을 지나 장공장 앞과 학교(鶴
‘삼농족어옥토 백천합어 홍천’ (三農足於沃土 百川合於洪川) 강원도지에 기록된 홍천에 대한 군명부(郡名賦)다. 백 개의 내(川)가 모여 큰 강을 이룬 땅 - 홍천이다. 남산에 올라 굽어보는 홍천은 큰 강물이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고 남북으로 중앙고속도로와 동서로 44번 국도가 지난다. 5번 국도와 44번 국도가 교차하고 외곽도로를 따라 서울로 동해로 4차선이
'야루정'에서 바라보는 '대미산'은 한 폭의 동양화다. 바위사이로 청정한 소나무가 눈(雪)에 반해 더욱 푸르다. 이번 기행에서 '대미산'이라고 부른 것은 홍천읍지에 명기된 지명을 따른 것일 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목산'이니 '성묵산'이라고 부른다. 대미산을 둘러쌓은 산성은 아직도 자취가 선명하다. 일명 '대미산성'이다. 그러나
속초는 '속새울'에서 비롯되었다. 비록 산골짜기의 고을이지만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형상이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여 예로부터 속새울의 앞산을 '와우산(臥牛山)'이라고 불렀다. '와우산'은 '속새울'과 '느릅나무정'에 걸쳐 누워있는 한 마리 소다. 배불리 속을 채우고 누워있는 소다. '노천'에 '비룡산'이 있다면 '속새울'에
눈이 많이 내렸다. 유난히 자주 많이 내렸다. 갑자기 내린 폭설이라 며칠 동안 꼼짝없이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신문을 뒤적거리다보니 올해의 사자성어가 눈에 들어왔다. 康衢煙月(강구연월)-`번화한 거리에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을 나타낸 말로, 태평성대의 풍요로운 풍경을 묘사할 때 쓰인다. 이 말은 중국 요 임금 시대에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노래한
2010 경인년(庚寅年)은 60년만에 돌아온 호랑이띠로 백호에 해당한다고 한다. 경인년의 경(庚)이 색상으로는 백색을 뜻하고, 인(寅)은 호랑이를 의미한다. 백호(白虎)해는 상서롭고 좋다는 의미로 통설된다. 역학적으로 경인년은 큰 변화와 충돌을 의미하는 해다. 경(庚)은 강하게 응결하는 금(金)의 기운을,인(寅)은 나무(木)처럼 지면을 뚫고 성장을 시작하려
‘개운(開雲)’ 구름을 열어 제치고 펼쳐진 마을이라는 뜻일까? 넓은 뜰을 가진 마을이다. ‘만대저수지’에서 바라보는 개운뜰의 저녁풍경은 한폭의 풍경화다. 그 뜰은 개운 ‘돌모루’를 지나 삼현 ‘무네미’를 거쳐 성전 ‘자패’에 이르기까지 지평선을 이룬다. 너른 뜰을 가졌기에 공작산에서 오음산에 걸쳐있던 구름도 이곳에선 개운(開雲)하였으리라. ‘개운’은 후동과
‘만대산(萬垈山)’- 산속의 산이다. 산을 넘고 또 산을 찾아가야 만나는 산이다. 산이 산을 불러 산이라 부른다. ‘오음산’, ‘공작산’, ‘대학산’이 밖으로 둘러서고, ‘비룡산(덕구산)’, ‘응곡산’, ‘먹방산’이 안으로 감싸 안은 산이 ‘만대산’이다. 산속에 갇힌 순한 짐승 같은 산이다. 만대산은 둘이다. 하나는 횡성군 공근면의 ‘만대산(630m)’ 이
‘오음산’은 절로 이름이 붙여진 게 아니다. 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공주터’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신현철씨(74, 월운리 공주터)는 오음산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신현철씨가 직접 들은 오음산의 울음소리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일 년 전이었다고 한다. 이른 아침이었는데 박무가 약간 낀 바람도 없는 날이었다고 한다. 아침 열시쯤 이었다
안개가 깊다. 정오가 되도록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 겨울 안개 속을 나서는 길은 신생의 빛으로 가득하다. 나뭇가지마다 눈꽃을 피운다. 올겨울 들어 자주 보는 겨울 풍경이다. 며칠 전에 찾아뵙겠다고 전화를 드렸던 월운 ‘공주터’ 신현철(74.월운리 공주터)씨 댁을 찾았다.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려 좀 늦게 ‘오룡터널’을 지나 ‘자패(재앞)’를 지나니 ‘오음산’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 ‘오음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다. 산이 간직한 소리일까? 봉우리마다 가지고 있는 저 소리를 들으며 ‘오음산’에 오른다. 오음육률(五音六律)이다. 초겨울의 산행은 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몸을 맡긴다. 산은 늘 거기에 있고 나는 산 속으로 들어간다. 마음을 열고 듣는 소리의 깊이가 오음육률 아니겠는가? 산
수타사 주차장 주변은 상가를 이루고 있다. 민박이며 음식점 등 여느 유원지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특색 있는 음식을 꼽으라면 콩 음식과 민물 매운탕을 꼽을 수 있다. 잘 알려진 콩 음식은 순두부, 초두부, 모두부 등 두부와 두부를 들기름에 지진 두부구이 새우젓으로 간을 한 두부찌개, 콩자반, 콩물국수, 청국장, 비지장, 갈아서 마시는 두유, 콩떡, 콩고물,